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한 고객 4000만명의 카드 번호와 이름, 유효기간은 물론 카드 뒷면에 있는 세 자릿수 보안번호까지 모두 유출된 이번 사건으로 한 해 쇼핑의 30~40%가 이뤄진다는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로 이어진 연말 홀리데이시즌에 소비자들은 때아닌 카드 도용의 공포에 떨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금융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이지만 사실 신용카드 위조와 도용에 관한 한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악명높은 국가다.
미국 전자결제협회(ETA)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에서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사기 피해액은 112억7000만달러(약 12조원)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무려 47%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신용카드 위조 범죄의 천국이라고도 불린다.
이처럼 미국에서 카드 위조와 그에 따른 피해가 엄청난 것은 미국 은행과 신용카드사들이 여전히 복제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마그네틱 카드만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이미 지난해말 대부분의 카드를 디지털 칩이 들어간 IC카드로 교체했지만 미국에서는 이보다 크게 늦은 2015년 가을까지 IC카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신용카드 위조가 밥 먹듯 일어나는 미국에서 소비자들은 어떻게 신용카드를 믿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카드 위조는 흔하지만 카드를 믿고 쓸 수 있도록 하는 사후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타겟의 카드 계좌정보 유출사건 직전에 기자 역시 아찔한 신용카드 도용 피해를 경험했다. 예금계좌 잔고를 확인하려고 은행 인터넷 뱅킹에 접속했다가 뉴욕과 뉴저지를 벗어난 적이 없는 기간에 캘리포니아에서 결제된 카드 사용내역 4건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해당 은행에 연락한 뒤 은행 담당자 조언대로 카드사에 카드 사용 중지를 요청하고 다음날 은행 지점을 찾았다. 그 담당자는 4건의 거래와 전후 다른 카드 사용내역을 비교하더니 단번에 ‘도용’이라고 결론 내리곤 한 줄 정도로 간단한 사유를 적도록 하고 서명을 받았다.
신용카드 도용과 위변조 피해는 우리나라에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얼마전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를 보니 카드 도용 피해는 5년만에 18배로 급증했고 위변조 피해도 같은 기간 7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 금융권도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올초부터 종전 마그네틱카드를 IC카드로 교체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5년부터는 IC카드로만 신용거래를 할 수 있도록 제한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렇다고 카드 도용 우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각종 해킹과 도용, 위변조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지능화되고 있고 IC카드 역시 상대적으로 보안에 강할 뿐 이같은 피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은 마음놓고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카드로 입는 피해를 적법하고도 손쉽게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법적 장치를 갖추고 이를 통해 금융기관들이 고객 피해를 막는데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금융 선진화를 추구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