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전쟁]①세계 곳곳서 ‘자원 무기화’ 조짐

자원 야욕 드러내는 러시아…가스관 볼모로 협박도
'퍼주는 시대는 갔다" 자원민족주의도 대두
미-중·미-러 대립이 자원전쟁 심화…'경제재앙' 관측도
  • 등록 2022-01-29 오전 7:09:00

    수정 2022-01-29 오전 7:09:00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최근 자원 부국들이 에너지를 무기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밸브를 붙잡고 협박하는 모양새이고, 인도네시아는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겠다며 천연자원에 대해 하나 둘 금수조치를 내리고 있다.

전면전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대에 각국은 자원을 무기로 가히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마땅한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그 양이 유한하고 특정 국가에 편중된 자원을 앞세운 전쟁은 각국의 이해관계와 진영 간 논리까지 더해지며 복잡 다난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가히 자원전쟁의 시대라고 할만하다.

새해 벽두부터 자원을 갖으려는 또 자원을 무기로 하는 자원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진= AFP)
욕심 드러내는 러시아 “자원이 무기가 된다”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국가는 러시아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긴장감을 높이는 갈등 상황마다 러시아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그 배경에는 공통적으로 자원에 대한 야욕이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해 벽두부터 급등한 천연가스 가격을 계기로 터진 카자흐스탄의 반정부 시위 진화에는 러시아의 공수부대가 개입했다. 국경을 인접한 동맹국인 카자흐스탄 정부의 요청이 있었다고 하지만 국가 내 소요 사태의 타국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카자흐스탄의 풍부한 자원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배경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카자흐스탄은 우라늄 생산량은 전 세계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석유 매장량은 300억배럴로 세계 12위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금·티타늄·구리·보크사이트·마그네슘·유황 등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전운이 감돌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와 서방이 대립하는 기저에는 자원 문제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유럽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천연가스의 수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유럽 천연가스 사용량의 40%가 러시아산인데, 이를 공급하는 가스관들 중 상당수가 우크라이나를 관통한다. 구 소련 시절 평지 비중이 높은 우크라이나에 파이프라인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는 정치·안보적인 이유도 있으나, 주요 자원의 수출 통로인 우크라이나를 통제권 하에 두고자 하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사진= AFP)


러시아는 자국이 가진 자원을 무기화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러시아는 지난달 벨라루스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의 수송량을 조금씩 줄이다가 급기야 밸브를 잠가 버렸다.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독일로 이어지는 새로운 가스관인 ‘노드스트림2’의 조속한 승인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천연가스를 주요 수출원으로 하고 있는 러시아는 서유럽 지역으로 향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가 가스 밸브를 잠그는 또 다른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0·나토) 가입에 반발해서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앞마당’에 해당하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서방세력의 동진(東進)으로 여기고 나토 회원국인 서유럽국가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줄이면서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30% 이상 급등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유럽으로 보내는 천연가스 수송량 중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가스관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파이프라인 사용 대가로 러시아산 가스를 저렴하게 공급받았을 뿐 아니라 수수료도 챙겨왔다.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우크라이나에 경제적인 제재를 통해 경고하는 모양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올해부터 보크사이트 수출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국가 산업을 원자재 수출 중심에서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가공 및 관련 제품 생산으로 바꿔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사진= AFP)


‘누이 좋고 매부 좋던’ 시대는 가고 ‘자원민족주의’가 뜬다

공격이나 압박을 위해서가 아닌 경우에도 자원은 무기가 된다. 최근 인도네시아와 멕시코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는 자국 석탄 재고 부족 등으로 이유로 1월 한 달간 발전용 유연탄의 해외 수출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단기적이지만 향후 국내 수요에 따라 언제든지 석탄 수출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는 신호가 나온 셈이다. 멕시코도 연료자급률을 높인다며 올해 원유 수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내년부터 원유 수출을 중단키로 했다.

자원 부국인 인도네시아는 석탄 뿐 아니라 광물 자원 단속에도 나섰다. 그동안 자원을 팔아 ‘푼돈’을 벌었다면 이제는 원재료를 가공해 높은 부가수익을 내는 하방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배터리 필수 재료인 니켈 원광 수출을 중단한 데 이어 올해는 알루미늄의 원재료인 보크사이트 수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내년에는 구리 원광(raw copper)에 대한 금수조치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팜오일 원유(CPO)도 언젠가 수출을 중단할 예정이며, 석탄 수출도 단계적으로 축소해 갈 것이라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무한 경쟁의 국제사회에서 공정무역이나 장기 계약, 균형 발전 등에 따른 책임감을 요구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분위기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AFP)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 진영과 중국, 러시아 간 패권 다툼이 격화되고 있는 점은 자원전쟁을 더 부추기는 요소다. 인도네시아의 석탄 수출 금지 조치도 표면적으로는 자국 내 석탄 비축량을 확보하기 위해서이지만 한 발 더 들어가 보면 중국이 미국 진영과의 갈등으로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하면서 이를 충당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산 석탄을 다량 수입하며 초래된 일이다.

미·중간 패권 경쟁은 정치와 첨단기술 뿐 아니라 자원 수출입에도 영향을 미치며 무역 전반으로도 확산하는 양상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당사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경고는 여러 차례 나왔다. 두 강대국의 대립이 생산 및 무역 관련 비용을 높이고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해 세계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레이 달리오가 미·중간 무역전쟁이 새로운 ‘경제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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