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희 로펌 제이 대표변호사]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5분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긴급 담화에서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본 국민 그 누구도 헌법 제77조의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국회는 헌법에서 규정한 절차에 따라 계엄 선포 155분 만에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이 헌법을 모를 리 없기에 국회의 해제 요구가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인지 의아했다.
그리고 그 답은 12월 12일 네 번째 대국민 담화에서 알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전산시스템 관리 취약을 지적하며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려서라도 자신의 범죄를 덮고 국정을 장악하려는 거대 야당의 국헌 문란 행위’로부터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의 붕괴를 막고 국가 기능을 정상화’하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강변했다. 그의 입장에서 거대 야당은 ‘때려잡아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의석수를 내세워 눈엣가시의 공직자들을 무더기로 탄핵 소추하고 불합리하게 예산안을 삭감하는 야당의 행태가 결코 적절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날을 세우고 공격과 논쟁을 하는 것과 권력으로 억누르고 처단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여전히 검사 시절의 정체성을 버리지 못하고 선과 악, 옳고 그름. 위법과 적법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갇혀 반대 세력은 때려잡거나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검사 시절에는 타협 없이 범죄자를 척결하고 앞만 보고 가는 그의 태도가 강직하다는 평가를 받았을지 몰라도 정치인이 된 지금은 상대와 소통과 타협을 못하는 ‘독재자’란 오명만 얻을 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공감 받지 못하는 윤 대통령의 오판을 보면서 왜 내로라하는 똑똑한 법률가들이 좋은 정치인은 되지 못하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법률가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기에 갈등 속에서도 상대와의 타협이나 설득이 잘 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못하다. 법률가는 기본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정답과 오답을 찾도록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이다. 법률가가 논리적이란 것도 결국 자신의 주장이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다는 뜻인데 반대로 해석하면 일관되게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주장은 받아들이지만 틀렸다고 생각하는 주장은 배척해야 할 대상일 뿐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공교롭게 전·현직 대통령도, 양당의 대표도 모두 법률가 출신이지만 이렇게나 반목이 심한 작금의 정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검사 시절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야당을 범죄 조직으로 몰아가는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질서 있는 퇴진’을 명분으로 조기 대선을 최대한 막아보려 했던 여당의 대표, 반대로 조기 대선에서의 사법 리스크를 피하고자 항소심의 소송기록접수통지를 받지 않는 방법으로 재판을 지연시킨다는 의혹이 제기된 야당의 대표 모두 똑똑한 ‘법률가’일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힘들게 공부한 헌법적 가치와 대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정치는 법의 잣대로 정답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함께 정답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은 반대와 비판에 부딪히더라도 반목하며 등을 돌리지 않고 용기와 인내, 지혜로 상대를 끝까지 설득하며 상대와 함께 정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고개를 숙일 줄도 알고 손을 먼저 내밀 줄도 알며 무엇보다 상대의 말과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통섭적 능력이 필요하다. 혼란한 우리 사회에 그러한 정치인이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