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없는 박물관'으로 떨어지는 낙조 품다…강화도 적석사

장수왕4년에 천축조사 오련지에서 연꽃 날려 5개 사찰 건립
사찰 창건해 산 이름 ‘오련’ , 화재 잦아 ‘적석사’로 개명
강화 8경 중 하나로 꼽히는 적석사 낙조대
  • 등록 2014-02-19 오전 6:00:00

    수정 2014-02-19 오전 6:00:00

적석사 낙조대에서 일몰을 바라보고 있는 법해스님. 화창한 날은 특히 서쪽으로 넘어갈 때쯤 붉은 빛이 더욱 강렬해진다. 마치 적련사의 이름처럼 붉은 연꽃을 연상시킨다.
[강화=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반도 동쪽은 열흘여간 폭설로 눈 속에 파묻혔고, 철새가 몰고 온 질병은 자꾸만 퍼져가고 있었다. 더불어 남쪽 바다는 인간의 실수로 인해 검은 기름띠가 해안가를 덮쳤다.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온통 깊은 상처뿐. 어디로 갈 건가 오랜 고민 끝에 강화도로 향했다. 가깝기도 하거니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그곳을 다시 찾기로 했다. 강화도는 서울 근교에 있으면서 산·바다·갯벌 등을 고루 볼 수 있고 고조선부터 고구려,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유적과 유물이 널려 있어 유구한 역사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냈다는 참성단부터 개화기 때의 격전지까지 한반도 역사를 축소해놓은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화도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르나 보다. 어디를 가도 수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다. 그중 이번에 소개할 곳은 고려산의 적석사와 적석사 낙조대. 해질 무렵 적석사의 낙조대에 올라 바라본 서쪽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했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바라본 내가저수지. 아직은 아침 저녘으로 시린 바람이 불어오고 있어서인지 저수지 가장자리는 얼음이 얼어있다.
△극락정토에 내린 다섯 색깔 연꽃

강화도 강화읍의 고려산 깊은 산중. 거기에 ‘돌을 쌓아 올린 절집’이 있다. 이름해 적석사다. 쌓을 적(積)자에 돌 석(石)자를 이름으로 삼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가파른 산 중턱에 지어졌지만 어디에도 돌을 쌓아 올린 흔적이라곤 없다. 그런데 왜 적석사라 하였을까.

적석사는 고구려 장수왕 때 창건됐다. 416년이다. 당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에 이어 장수왕까지 연이어 한강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장수왕 4년 즈음, 이런 얘기가 전해진다. 천축국(인도)에서 온 천축조사가 강화도를 건너와 절터를 찾고 있었다. 어느 날 염불을 외다 잠이 들자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스님에게 산 정상에 올라가 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산 정상에 오르니 산 위에 연못 ‘오련지’가 있었다. 다섯 빛깔의 연꽃이 피어 있는 그곳. 불가에서 연꽃은 극락을 뜻하니 연꽃이 발견됐다는 오련지는 극락정토를 상징한 셈이다. 고승은 이 연꽃들을 하늘에 날려 연꽃이 떨어진 곳에 다섯 개의 사찰을 세웠다. 이 극락에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난 다섯 사찰을 세워 작은 극락을 꾸민 것이다.

이때 지어진 절이 적련사와 백련사, 청련사, 활연사, 흑련사 등이다. 이 다섯 절이 있어 산 이름은 오련산으로 불렀다. 어찌 됐던 지금은 적·백·청련사 세 사찰이 남아 있다. 그런데 왜 적석사는 적련사가 아닐까.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부득이한 이유가 있다. 오련산과 절에 불이 자주 난 데 유래가 있다. 불을 연상시키는 ‘붉을 적(赤)’자를 지우고 ‘쌓을 적(積)’자를 써서 적석사로 바꿔 부른 것.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나 그래도 적석사는 백련사, 청련사와는 하나의 인연으로 묶여 있다. 다섯 색깔의 연꽃 이름이 그랬던 것처럼 적석사는 여전히 붉은 연꽃처럼 매일 저녁 붉게 물들고 있다.

적석사 부부목, 적석사 한복판에 서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하나는 임신한 아낙을 닮았고, 또 한그루는 남정네를 닮았다해서 부부목(夫婦木)이라 불린다.
△산·바다·갯벌 등 3색 파노라마 펼쳐져

고려산 중턱의 적석사로 가는 길. 이 길은 겨울에도 운치가 넘친다. 드넓은 내가저수지를 따라 차를 몰고 산중으로 드는 길이 제법 청량하다. 산길은 꽤 가파른 편. 길이 끝나는 지점에 적석사가 자리하고 있다. 적석사에 당도하면 누구나 긴 탄성을 먼저 터뜨린다. 마치 허공에 선 듯 건너편으로 펼쳐지는 꿈틀거리는 산세가 눈앞에 펼쳐지고, 수평선 멀리 총총히 박힌 섬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어찌 이런 자리를 찾았을까. 어디 내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은 장쾌한 전망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적석사는 오래된 사찰에서 느껴지는 ‘묵은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절집 건물들은 현재 대부분 새로 지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1998년 대홍수가 사찰을 덮치면서 대웅전 절반이 무너졌고, 향로전과 요사채까지 매몰된 탓이다. 그럼에도 워낙 앉은 자리가 빼어나서인지 새로 지은 법당들이 제법 웅장하고 힘차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한때 그 사세 또한 대단했다. 조선 숙종 40년(1714)에 세워진 적석사 사적비에 그 단서가 기록돼 있다. 고려 몽골 침입 때는 임금이 거처하기도 했고 선원사에서 판각된 대장경 장경판이 적석사에 옮겨져 보관되기도 했다. 또 강화도 전 지역에 적석사의 전답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지금의 초라함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화려했던 사세가 위축된 것은 조선 왕조 말기. 일본에 강탈 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육영학교(보창학교의 전신)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적석사의 재산을 몰수해가면서부터다.

그나마 절집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만이 그 영욕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수백년 적석사의 흥망을 지켜보았으리라. 가만히 살펴보니 생김새가 특이하다. 하나는 임신한 아낙을 닮았고, 또 한 그루는 남정네를 닮았다. 안내판에는 부부목(夫婦木)이라 씌어 있다. 이 느티나무를 설명하는 안내문이 세속적이면서도 인상적이다. ‘그들은 함께 서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한 곳을 바라보는 자다. 그대 곁에 나여서 한없이 미안하고, 내 곁에 당신이어서 한없이 고마워하며….’

느티나무는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같은 시선으로 마당 끝에 서서 담벼락 너머 아래를 굽어보니 그 모습이 절경이다. 마을, 호수, 바다, 산봉우리, 길, 논밭을 한눈으로 잡아당긴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마치 한 폭의 시선 안으로 접어 넣은 듯하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바라본 일몰. 서해로 해가 넘어갈 때 즈음이면 붉게 타오른다. 마치 적련사의 붉은 연꽃처럼 그렇게 붉게 물들어 간다.
△서해바다에 피어난 붉은 연꽃 ‘낙조대’

적석사 절집의 풍모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건물들은 죄다 최근에 복원된 것이라 어쩐지 처연하고 썰렁한 느낌이다. 적석사는 어쩌면 눈으로 보는 것보다 침묵의 소리를 느끼는 것이 걸맞은 절집인지도 모르겠다. 적석사의 침묵이 가장 어울리는 자리는 낙조대다. 이곳의 낙조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강화도 8경 중 으뜸으로 꼽겠는가. 특히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우리나라 3대 해넘이 명소로 꼽힌다.

적석사 옆 샛길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낙조대다. 낙조대는 정도진과 일직선에 위치한 정서진이다. 굳이 해질 무렵이 아니라도 낙조대의 풍경은 경쾌하다. 발 아래 강화도의 드넓은 갯벌과 들판이 펼쳐져 있고 낙조대 주변을 둘러싼 여덟 산의 능선도 가히 압도적이다. 마니·진강·혈구·고려·봉천·별입·화개·혜명산이 그것이다. 마치 연화의 8개 꽃잎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낙조대의 해수관음보살은 아마도 이들 산을 꽃잎 삼아 자리한 듯싶다. 해질 무렵 자취를 감추기 직전의 햇빛이 하늘과 산·바다를 모두 붉게 물들인다. 적석사의 스님이 산길로 올라와 낙조를 바라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장엄해 말조차 붙일 수 없다. 마치 여기서 모든 시름을 다 잊는다면 그것이 곧 극락이 아니겠는가라고 찾는 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듯하다. 스님의 염원이 담긴 시선 아래로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기운다.

낙조대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해수관음보살을 옆으로 끼고 오르면 된다. 좁은 등산로를 따라 넉넉잡아 20여분 오르면 낙조봉까지 오를 수 있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낙조봉에 오르니 강화도의 서해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으로는 서해바다, 뒤로는 강화의 너른 벌판이 펼쳐진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곳을 요즘 산악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봄이면 진달래꽃이, 가을에는 억새가 흐드러지게 이들의 발길을 이끈다. 그중 적석사 코스가 가장 인기다. 다음으로는 백련사 코스와 청련사 코스다.

향토음식점 ‘토가의 두부새우젓국
◇여행팁

△가는길= 일단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도를 들어선다. 강화읍 내 서문삼거리에서 강화고등학교 방향으로 꺾어 고비고개로 접어든다. 이 길을 따라 청련사 앞과 고비고개 정상을 넘어서면 고천리 입구에 이른다. 국화저수지를 지나 우회전해 마을 산길로 오르면 적석사에 이른다.

△먹거리= 강화의 맛집이라면 화도면 흥왕리 마니산 정상 아래에서 운영하는 ‘토가’(032-937-4482)를 추천한다. 강화도 시인으로 유명한 함민복 선생의 단골식당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의 주요 메뉴는 두부새우젓찌게다. 쌀뜨물에 직접 만든 손두부를 끓여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는 음식이다. 처음 넘김은 다소 짜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고소함과 깔끔함이 입안을 감돈다.

△머물곳= 강화도는 유난히 펜션이 많다. 특히 해넘이 마을로 유명한 장화리 인근 바닷가 근처의 펜션은 아담하고 예쁜 펜션들이 많은 편. 더불어 해질 무렵의 낙조는 이곳만의 특별함을 더한다. 취향에 따라 펜션을 선택해도 좋고, 가격에 따라 선택해도 좋다. 플로망스 펜션(032-937-8262), 해넘이 펜션(032-937-2626), 바닷가 펜션(032-937-8499)

적석사 낙조대에서 바라본 해넘이. 해가 질 무렵 자취를 감추기 직전의 햇빛이 하늘과 산 바다를 모두 붉게 물들인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바라본 낙조봉. 낙조대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면 낙조봉까지 갈 수 있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해넘이를 바라보고 있는 적석사 법해스님. 화창하던 날도 서쪽으로 해가 넘어갈 때 쯤이면 온통 붉게 물든다. 마치 적련사의 이름처럼 붉은 연꽃을 연상시킨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해넘이를 바라보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 이곳 낙조대는 강화 8경 중 하나로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수 있는 명소다.
적석사 대웅전. 1998년 대홍수로 대웅전이 물에 휩쓸려간 이후 새롭게 지었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일몰을 바라보고 있는 법해스님. 적석사 낙조대에는 해수관음보살이 매일 서해로 넘어가는 낙조를 지켜보고 있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바라본 해넘이의 모습. 해질 무렵 자취를 감추기 직전의 햇빛이 하늘과 산 바다를 모두 붉게 물들인다.
적석사 부부목, 적석사 절집 한복판에 서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하나는 임신한 아낙을 닮았고, 또 한그루는 남정네를 닮았다. 안내판에 부부목(夫婦木)이라 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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