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부모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 겁니다. 특히 전학한지 1주일 정도밖에 안된 시점이라면 더 그렇겠죠.
‘우리 아이가 새로운 학교에 적응을 잘 못 한건가.’ 모두 부모 탓인 것만 같아 속상하기만 합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냐?’ 생각하면 할수록 선생님이 우리 애를 미워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부모는 묘안을 떠올립니다. 아이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서 대체 교실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해보자는 겁니다.
녹음기에 담긴 내용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습니다.
“OO이는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저쪽에서 학교 다닌 거 맞아? 1·2학년 다녔어? 공부시간에 책 넘기는 것도 안 배웠어? 학습훈련이 전혀 안 돼있어. 1·2학년 때 공부 안하고 왔다갔다만 했나봐.”
이보다 더 심한 발언도 있었습니다. 두달이 채 안되는 기간에 확인된 것만 열여섯 번입니다. 부모는 선생님의 이같은 발언들이 아동학대라고 생각하고 수사기관에 신고했습니다. 녹음기에 담긴 녹음파일과 녹취록도 함께 제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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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녹음파일 등 제출된 증거를 토대로 A씨의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나이 어린 초등학생을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었음에도 본분을 저버리고 단기간에 반복적으로 정서적 학대행위를 저질러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따끔하게 지적했습니다.
이에 A씨는 ‘타인간의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한 부분은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는데요.
2심에서도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은 인정됐습니다. 재판부는 “초등학교 교육은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므로, 교사가 교실에서 한 발언은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의 ‘공개되지 아니한 대화’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피해아동의 보호를 위해서 녹음 외에 별다른 유효적절한 수단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증거를 수집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죠.
결국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는데요. 지난 11일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A씨의 주장대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겁니다.
따라서 부모가 몰래 녹음한 교사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므로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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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이같은 판단은 사실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기존 판례에 부합하기 때문이죠.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파일 등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이러한 녹음파일 등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원칙에 관한 예외가 인정된 적도 없습니다. 증거능력을 인정했던 하급심의 판단이 주목받았지만 원점으로 돌아온 겁니다.
그렇다면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을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다른 대처 방법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여성·학교폭력·성범죄 등을 전문으로 다루는 이향은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자녀에 대한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먼저 피해일로부터 가까운 시점에 자녀의 진술을 청취해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이때 진술은 가능한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아이가 당시의 상황과 선생님의 말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떠올리도록 한 후 진술하는 아이의 표정과 내용을 생생하게 동영상 녹화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의 일기장 같은 기록 역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그 이야기를 들은 주변 친구들에게서 당시 상황에 대한 진술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자녀가 어릴 경우는 친구 부모님의 협조를 얻어야겠고요. 친구가 당시 함께 들은 이야기를 진술하도록 한 뒤 녹음해두거나 진술서의 형태로 확보해둔다면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적인 상담기관을 통한 상담 및 진료 자료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이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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