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이데일리 윤도진 특파원]
"여행비자로 한국 가서 불법으로 계실 분 급모집합니다. 나이제한 없고 남녀불문, 민족불문 모두 신청 가능합니다. 각종 이유로 기각된 분, 불법체류, 입국규제된 분들도 가능. 수속기간 10일좌우. 3월20일까지 모두 6명 모집"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C모씨. 6년전 한국으로 유학온 중국 국적의 부인 H씨와 결혼해 현재 상하이에 자리잡고 있는 그는 한 인터넷 사이트 내용을 보고 가슴에 불길이 치솟았다.
사정은 이랬다. "실제로 결혼한 것 맞냐? 다른 생각으로 비자를 받는 것 아니냐? 언제 이혼할 지 모르지 않냐? 이런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는 직원을 보면 한 대 후려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죠." C씨는 부인의 비자 갱신을 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대우를 받아왔다고 토로했다.
전문직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배우자 H씨가 소지하고 있는 비자는 외국인 배우자를 대상으로 발급하는 `F-2`비자로 1~3년에 한 차례씩 갱신해야 한다.
비자 갱신 때마다 가슴앓이를 하던 C씨가 이 인터넷 생활정보 홈페이지를 안 것은 작년무렵. 차라리 대행업체나 브로커를 통하면 속끓일 일이 덜하겠지 싶은 마음에 내용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실태를 본 그는 더욱 울화가 치밀었다.
C씨의 소개로 직접 찾아본 이 홈페이지(
www.123123.net)의 정보교류, 출국유학 관련 게시판에는 비자 브로커 회사들의 모집글들이 하루에도 수백건씩 올라오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빠른 시일내에 한국 보내드립니다`
`1차적으로 F-4 5년비자 찍어드립니다`
`시험에 추첨 안된 분들 학원 다닐 필요 없이 H-2 비자`
홍보성 모집글에 등장하는 비자는 대부분이 장기 체류가 가능한 것으로 한국인 C씨의 배우자 H씨가 소지한 것보다도 만기가 2~3배 긴 것들이었다.
H-2, F-4 모두 조선족이 발급대상인 5년 복수비자. 유효기간 동안 단순방문이나 사업, 무역, 회의참가 및 관광이 가능한 비자. 그런만큼 관련 시험, 한국 측 상대방 및 친척 등의 보증, 예금잔고 확인서 등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지만 대행 업체들은 이 조건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었다.
아예 노골적으로 `장기 불법체류 상담, 한국 여행 가서 불법으로 계실분`이라고 호객하는 경우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 ▲ 중국에 서버를 둔 생활정보 사이트 123123.net의 출국유학 관련 게시판에서 `불법`으로 검색한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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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씨는 "실제로 이게 가능할까 싶은 정도였다"며 "합법적으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저런 절차와 조건을 대며 까탈스럽게 굴면서도 불법도 마다않는 브로커에게 쉽게 비자가 나간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라고 분을 삼켰다.
이런 실태를 그가 직접 한국 내 출입국관리사무소와 법무부 등에 브로커의 연락처 등 자료까지 첨부해 메일, 민원 등으로 신고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회신도 받지 못했다.
브로커들은 한국행 비자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나라 어려운 비자를 찍어드립니다` `싱가포르 취업보장, 빠른시간에 비자 해드립니다` `미국 캐나다 조건없이 상무여행 비자 내드립니다` 등 행선지도 다양했다.
| ▲ 이 게시물을 올린 업체 직원은 한국 비자 발급 비용으로 3만5000위안이라고 설명하며 직접 호구증(신분증)만 들고 옌지(延吉)에 위치한 사무실로 오면 된다고 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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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직접 한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조선족 교포로 추정되는 해당 업체 직원은 H-2 등과 같은 한국행 장기 비자인 경우 3만5000위안, 우리돈 600만원 정도의 수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건이 맞지 않는경우 한 건당 5000~1만위안(85만~170만원) 정도 금액이 추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주재원 A씨 역시 "2년전 중국 현지 직원들을 한국으로 단체 연수를 보내려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며 "조건이 맞지 않는 직원들이 있어 브로커를 통해 알아봤는데 수수료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았다"고 털어놨다.
실태가 이렇다 보니 최근 벌어진 상하이 스캔들과 같은 일이 나올 수 있다는 게 현지 교민들 얘기다. 상하이 스캔들의 주인공 덩 모 여인은 외교관들과의 부적절한 관계와 실력 행사 등을 통해 비자 대행 이권 개입을 하려했던 정황이 드러나있는 상황이다.
상하이 총영사관은 2008년과 2009년 수배자에게도 여권을 내주는 등 부적정한 비자 발급 등과 관련한 문제로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상하이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족 B씨는 "영사들의 고압적인 태도나 업무 태만등도 문제지만 브로커들은 비자 영사 보조원들과 관계를 맺고 영사의 업무 공백 시 몰래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