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치맥, 이제 할 수 없나요?”

법 개정으로 지자체 ‘금주구역’ 지정 가능
공공장소 음주문화 두고 시민들 갑론을박
한강은 여전히 ‘핫플’...서울시 의견 수렴 중
전문가 “지자체장 의지·국민 인식 개선 중요”
  • 등록 2021-07-05 오전 12:35:10

    수정 2021-07-05 오전 12:35:10

지난달 30일 개정 국민건강증진법이 시행됐다.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장소 음주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시민들은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다.

공공장소 금주를 찬성하는 시민들은 안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규제를 환영하고 있다. 반면 개인의 자유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처사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외 음주에 비교적 관대한 시민의식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는 각 지자체에 배포할 표준조례안 마련을 위해 연구용역 및 간담회를 마치고 추가 의견을 수렴 중이다. 서울시 또한 지난달 23일부터 시민참여 플랫폼 ‘민주주의 서울’을 통해 공공장소 금주를 주제로 시민들의 찬반 의견을 듣고 있다.

반포한강공원에 설치된 야간 음주 자제를 권고하는 현수막. (사진=윤민하 기자)


법 개정해 처벌 근거 마련...음주 규제 실효성 높일까

개정 국민건강증진법은 공공장소 음주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각 지자체가 조례로 특정 장소를 금주구역으로 지정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동안 각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음주 제한구역을 지정·운영해 왔으나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시 ‘음주청정지역’이 한 사례다.

서울시는 2017년 11월 ‘서울특별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를 신설해 서울숲·남산공원·월드컵공원 등 직영공원 22곳을 이듬해 4월부터 음주청정지역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음주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었다. 조례에 따르면 해당 장소에서 ‘만취해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하거나 악취가 나게 할 경우’에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어서다.

지난달 30일 반포한강공원 한 편의점 앞 시민들이 모여 있다. (사진=윤민하 기자)


한강 치맥못 보나? 금주구역 지정 두고 시민들 갑론을박

한강시민공원은 개정법 시행에 따라 금주구역으로 지정될지 가장 이목이 쏠리는 곳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야외모임과 음주를 즐기는 친숙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개정법이 시행된 지난달 30일 오후 9시께 찾은 반포한강공원에서도 술을 마시는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잔디밭 군데군데 놓인 돗자리 위로 맥주캔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둑한 밤하늘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치맥’을 하는 모습이었다. 강가 한 편의점 앞은 30분이 지나도록 빈 테이블을 찾을 수 없었다.

방역 수칙을 위반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 남녀 일행 5명은 비좁은 실외 테이블에 모여앉아 반포대교를 배경으로 마시던 술을 들고 ‘셀카’를 찍었다. ‘턱스크’를 한 채였다. 귀가를 권고하는 안내 방송과 현수막이 무색할 만큼 오후 10시가 지나자 강가에는 사람들이 더욱 몰렸다.

이날 공원을 방문한 시민들은 공공장소를 금주구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전했다.

방학을 맞아 대학 동기들과 함께 한강을 찾았다는 김지환(24·남)씨는 “한강이라는 공간이 젊은 세대에게 주는 행복감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공공장소 음주를 규제하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금주구역을 지정할 때 시민 의견을 충분히 고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 일행이던 한모(24·여)씨는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 아닌가”라며 “특정 실외 공간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해도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생겨 그곳에 사람이 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일부 시민은 안전을 이유로 규제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신반포역 근처에 거주한다고 밝힌 한 30대 남성은 “가끔 지나치게 술을 마시고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고성방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공원 등 공공장소는 모두가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음주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서울특별시)


정부·지자체 단순 규제 아닌 올바른 음주문화 정착이 목적

보건복지부는 개정 국민건강증진법 시행에 따라 금주구역 지정에 대한 표준조례안을 마련한 후 각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법이 공포된 후 그동안 ‘어느 장소를 금주구역으로 지정해야 하는지’ 등 세부 기준이 없어 혼선이 우려된다는 지자체와 전문가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금주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장소를 예를 들어 제시했고 과태료 등 세부 운영 방안을 담았다”며 “표준안을 각 지자체에 보낸 후 의견을 다시 수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주 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활동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는 특히 주류 광고 규제·금주구역 지정 등 관련 법 개정이 활발히 이뤄졌다”며 “음주에 관대한 기존 문화를 개선할 수 있도록 변화된 정책에 초점을 맞춰 캠페인 등 복지부 차원의 홍보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8월 22일까지 진행하는 온라인 시민토론으로 공공장소 음주 규제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견해를 듣고자 한다”며 “관공서·학교뿐만 아니라 공원 등 찬반이 엇갈리는 장소에 대해서도 충분히 의견을 수렴한 후 (금주구역 지정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조례에 따른 서울시 음주청정지역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밝혔다.

시 관계자는 “현행 음주청정지역이 사실상 금주구역이 될 예정”이라며 “그동안 음주청정지역 및 관련 조례를 두고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조례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금주구역 지정은 실외 음주 자체를 규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올바른 음주 문화 정착을 장려해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려는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 각 지자체장 인원 분배·예산 마련 나서야 실효성 보장

전문가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조례를 제·개정하는 각 지자체의 실행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장소 음주에 관대한 국민 인식 또한 법 개정을 계기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했다.

표준조례안 연구용역을 수행한 손애리 삼육대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일선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한정된 기존 인원으로) 단속을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며 "단속 및 관리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게 실무자를 지정하고 예산을 배부하는 등 지자체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각 지자체의 노력을 촉구했다.

손 교수는 이어 "(금주구역 지정은) 관광특구 등 지역별로 이해관계가 다른 문제"라며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건 각 지자체다. 단체장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전병율 한국보건협회장은 공공장소 금연을 예로 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올바른 음주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와 그렇지 않은 장소를 구분하자는 것.

전 협회장은 “공공장소 음주는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뿐더러 폭력·인사사고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며 “흡연구역 이외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것처럼 공공장소 음주 또한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앞으로 국가를 이끌 젊은 세대가 이같은 사회적 움직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법을 개정하는 데서 끝내면 안 된다”며 “공공장소 금주 캠페인이나 인센티브(보상) 활성화 방안 마련 등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했다.

/스냅타임 윤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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