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줄었지만, 10명 중 4명은 상습범…‘중독’ 어떻게 끊나

‘음주운전=예비 살인’ 분위기에도 작년 11만명 적발
2회 이상 상습범 5만명…7회 이상도 1000명 달해
음주운전은 습관…“중독성 다스리는 방향 개선”
  • 등록 2022-06-24 오전 3:00:00

    수정 2022-06-24 오전 3:00:00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2차선에 멈춰 있는 차가 있어요.”

지난 6일 밤 11시쯤 서울 서초구 도로 한복판에 멈춰선 차량이 있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실제 왕복 8차선 도로 한가운데 정차된 차량을 발견했다. 경찰관이 문을 두드리며 잠든 운전자를 깨우자 갑자기 차량이 후진해 순찰차와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술 냄새가 확 풍기던 운전자의 음주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 취소 수준(0.08%)으로 측정돼 운전자는 현장에서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검거됐다.

서울 서초구 도로 한복판에 정차해 있던 차량이 갑자기 후진해 현장에 출동한 순찰차와 부딪힌 모습(사진=서울경찰청 SNS 갈무리)
23일 경찰청의 ‘연도별 음주운전 재범자 단속 실적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작년 음주운전 단속에 1회 이상 적발된 사람은 11만5882명으로 전년(11만7549명) 대비 1.4% 줄었다. ‘음주운전=예비 살인’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코로나19 여파로 회식 등 대면접촉이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해당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0년에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사람은 30만명을 넘어섰지만, 2017년에 20만명대로 줄었으며 2018년 이후로는 10만명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음주운전 상습범의 비중은 늘었다. 작년 음주운전 2회 이상 상습적으로 음주운전을 한 사람은 5만1582명으로 전체 음주운전 적발자 가운데 44.5%를 차지했다. 음주운전한 10명 중 4명은 상습범이란 얘기다. 2010년 40.8% 수준인 것과 비교해보면 늘었다. 작년에 7회 이상 음주운전을 한 사람도 977명이나 된다. 실제 음주운전 상습범이 낸 교통사고도 늘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삼성화재에 가입한 재범 음주운전자의 교통사고는 2019년 264건에서 작년 283건으로 2년 새 7.2%(19건)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 재범은 습관이라며, 처벌 강화가 아닌 ‘중독성’을 사전에 다스릴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유상용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음주운전 규제는 크게 강화됐지만, 음주운전 재범 사고 비율이 줄지 않는 것은 음주 자체의 중독성 때문”이라며 “단기적 처벌만으로는 근절하기 어려워 엄중한 처벌뿐 아니라 사전에 음주운전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을 마련하고 교육과 치료 프로그램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습적인 음주운전을 규제할 대안으로 미국 등 외국에서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는 ‘음주시동 잠금장치(안티록)’가 꼽힌다. 자동차에 음주측정기를 설치해 운전자가 시동을 걸기 전에 호흡 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 규정치를 넘으면 시동을 걸지 못하도록 하는 기계적 장치다. 경찰에서 음주운전으로 면허 정지·취소 처분을 받은 운전자 차량에 해당 장치를 설치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관련 도로교통법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또 전문가들은 최근 헌법재판소가 반복된 음주운전이나 음주측정 거부를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 위헌 판결에도 음주운전 사고 사건에서 엄벌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음주운전으로 대만인 유학생을 숨지게 해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은 최근 징역 8년을 확정받았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사람의 재범을 ‘법’으로서 가중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판단일 뿐, 음주운전자에 대한 가중처벌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음주운전자의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하면 일반 형법이나 특가법을 적용해 중형을 부과할 수 있는 점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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