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의 키워드] 블루보틀과 N포세대의 '플라시보' 만족

20~30대 블루보틀 인기 왜?
희소성에 여는 지갑...플라시보 소비 증가
얇은 지갑 사정 고려한 이색 상품 잇따라 출시
  • 등록 2019-05-12 오전 12:15:24

    수정 2019-05-12 오후 10:38:46

블루보틀(Blue Bottle) 1호점 개점 사흘째인 6일 서울 성동구 성수점을 찾은 시민들이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로 한 주 간 수많은 정보들이 홍수처럼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아울러 빠르게 변하는 세태를 반영한 시사 용어와 신조어들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죠. 스냅타임에서 한 주를 강타한 사건과 사고, 이슈들을 집약한 키워드와 신조어들을 알기 쉽게 정리해주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매주 일요일 하나의 키워드를 한 주 간 발생한 이슈들과 엮어 소개 합니다.

와이파이 없는데 대기 3시간...블루보틀 인기 왜?

지난 3일 한국에서 정식으로 영업을 개시한 미국의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의 성수 1호점이 지금까지도 사람들 입에 연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개점 일주일이 흐른 지금까지도 평균 대기 고객만 200명을 넘는 등 인기가 식지 않는데요. 개점일 하루 매출만 6000만원으로 세계 매장 70여곳의 하루 매출을 뛰어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평균 3~4시간의 긴 대기 행렬을 견뎌내는 것 외에 여러 제약이 뒤따르는 곳인데도 말이죠. 대기 줄에 다른 사람이 합류할 수도 없고 일행이 있을 경우 한 사람이 한꺼번에 음료를 계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카페 사업의 기본 공식과도 같은 '와이파이'와 '콘센트'도 이 곳에선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내 2호점 개점 예정 소식까지 더해져 더욱 화제가 모아집니다.

특히 줄을 서서 소비하는 고객 대부분이 20~30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전문가들은 블루보틀 열풍이 포기를 체화한 청년 세대의 '플라시보 소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분석합니다.

블루보틀 뿐만이 아닙니다. 패션업계는 물론 자동차·보험·금융업계까지 최근 산업계에서는 이같은 소비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한 다양화·저가·희소 마케팅 전략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플라시보 소비'란 키워드로 이번 한 주의 이슈를 엮어보았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미래보단 현재,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플라시보 소비는 가짜약, 속임약을 뜻하는 '플라시보'(Placebo)란 단어와 '소비'가 결합된 신조어로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축약한 '가심비'(價心費)란 단어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플라시보는 실제 생리 작용이 없는 물질로 만든 약을 말합니다. 환자를 일시적으로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투여되는데 속임약을 환자가 진짜 믿게 됐을 때 증세가 나아지는 반응을 '플라시보 효과'라고도 부릅니다.

가격과 품질, 성능이란 객관적 수치에 방점을 뒀던 기존의 소비 형태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플라시보 소비 형태의 주된 특징입니다. 중요한 건 오로지 '나의 만족'이죠.

이같은 소비 형태는 소유 그 자체에 얽매여 있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의 심리를 담고 있습니다. 나에게 다양하고 특별한 경험과 만족을 줄 수 있다면 지갑을 여는 것이죠. 이들은 특정 재산과 상품을 소유하거나 자신의 미래, 노후를 위해 저축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서비스와 특별한 경험을 두로 체험하는 편에 가치를 두며 이를 더욱 합리적인 소비라고 여깁니다.

'평생 소유'의 개념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 대비 성능과 필요성, 품질에 더이상 관심가지지 않습니다. 가격 대비 '희소성'과 '독창성'에 초점을 두며 합리적인 가격에 얼마나 간단히 내가 원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따집니다.

다른 커피보다 비싸지만 특별하잖아!

밀레니얼 세대가 블루보틀의 열광하는 것은 한마디로 적당한 가격에 경험할 수 있는 '희소성' 때문입니다. 세계 곳곳에 매장을 뒀지만 국내에선 맛볼 수 없던 글로벌 커피브랜드가 처음 상륙했다는 사실이 소비자들의 발길을 이끈 것이죠. 다른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와이파이·콘센트가 없는 것, 긴 대기시간과 까다로운 주문 시스템 등 여러 제약들도 이들 세대에게는 하나의 신기한 체험으로 여겨집니다. 쉽게 입장 및 이용이 어려운 장소와 서비스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경험한 것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해시태그()를 달고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놀이가 된 것이죠.

지난해 3월 한국에 처음 상륙한 대만 샌드위치 '홍루이젠', 2012년 흑설탕 밀크티 카페 '흑화당'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블루보틀의 카페라떼 가격도 원두에 따라 6000원~7000원 정도로 다른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카페라떼보다 2~3000원 가까이 비쌉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경험할 수 있는 희소가치에 비하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며 지갑을 엽니다.

대학생 정건희(가명·24)씨는 "다른 커피전문점보다 몇천원 비싼 가격이지만 1만원 이내로 경험할 수 있는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해 아깝지는 않은 것 같다"며 "기왕 방문해보는 거라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초창기에 가보는 편이 국내 첫 상륙의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전국 대부분 지역의 대기가 미세먼지 '나쁨' 수준을 보인 27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이 뿌옇다. (사진=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N포세대의 자기만족법...보험업계 변화도 잇따라

보험업계에서도 역시 미래 대신 현재를 중시하며 희소가치에 관심을 가지는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을 충족시키고자 이색 미니 보험들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는 '미세먼지 보험'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습니다. 모바일 금융 서비스인 '토스'가 운영하는 행운 퀴즈에 미세먼지 보험과 관련한 문제가 출제돼 관심을 모았기 때문인데요.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보험사들은 피부염, 비염 등 환경성 질환을 특약으로 보장하는 보험 상품들을 속속 출시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드론 보험, 펫보험 등 특화된 상황에서의 서비스를 보장하는 미니 보험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죠. 이 상품들은 대개 월 200~500원 수준의 파격적인 저가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주요 타깃은 지갑이 얇은 20~40대입니다. 비용 부담이 커 가입률이 적은 종합보험 대신 특화된 소형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음으로써 관심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상품들이 보험사의 수익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보장 범위, 금액도 충분치 않다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한 때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어 가입을 시킨 뒤 마케팅에 활용할 목적으로 고객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려는 것이 아닌가란 의혹도 제기되는 실정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래를 위한 대비, 투자의 개념의 희박해진 밀레니얼 세대에게 '보험'은 이미 그 자체로 매력이 없는 상품"이라며 "그 안에서 수요를 이끌려면 시의성이 있으면서 저렴한 가격에 특화된 상황에서의 특약을 보장해줄 수 있는 소형 상품 마케팅이 이들을 잠재고객으로 끌어들이는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에 대해 "여러 경제, 사회적 요인으로 연애, 내 집 마련, 결혼 등을 포기한 'N포세대'이기도 한 밀레니얼 세대의 청년들은 내 집 마련, 결혼 등을 소망하지만 지금의 사회, 경제적 여력으로는 발버둥쳐도 이룰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 시도도 하기 전에 포기해버린다"며 "포기에서 따라오는 무기력과 상실감을 극복할 대안 소비가 '플라시보 소비' 형태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포기와 무기력을 체화했지만 희소성에 늘 목말라 한다. 구매력을 떨어지지만 좋고 특별한 것을 체험하며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한다"며 "이 때문에 가성비는 떨어져도 나름의 적당한 가격에 자신의 품격을 높여줄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에 목 말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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