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골프)경쟁이 숙명인 게임

  • 등록 2009-09-15 오전 10:25:03

    수정 2009-09-15 오전 10:34:07

[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오래 전이다. 박세리에 이어 김미현이 미국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한국 여자골퍼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을 때 취재차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김미현 선수 집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김미현 선수 집 근처에 살던 한 미국인이 놀러 왔다가 이런 말을 했다. “골프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 뿐인데 한국 언론은 왜 꼭 누군가와의 경쟁으로 몰고 가나.”

당시 한국 언론이 골프 관련 기사를 다룰 때 김미현과 박세리, 박세리와 김미현의 대결 구도를 밑바탕에 뒀던 것이 사실이다. 먼저 성공한 박세리와 그에 도전하는 김미현. 골프대회 성적도 단순한 순위가 아니라 누가 누구보다 잘했는가에 관심이 쏠렸었다.

그 때 미국인의 질책에 나는 적절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한국언론이 지나치게 대결구도로 몰고가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골프가 진짜 자신과의 싸움일 뿐일까’ 싶다.

자꾸만 끝에서 오른쪽으로 휘곤 하는 구질을 바꾸기 위해 이런저런 궁리를 할 때, 어느 순간 중심축인 몸통을 굳건하게 잡아두는 느낌을 깨닫고는 뛸 듯 기뻐했던 것을 생각하면 골프는 분명 자신과의 싸움이 맞다. 공이 끝까지 똑바로 날아가 떨어지는 것이 그저 좋았으니까.

하지만 그 좋은 느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며칠 전 내 지갑 털어간 친구를 당장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멋진 폼과 폭발적인 샷, 정교한 퍼팅, 그리고 꿈의 스코어…. 해내고 싶은 그 모든 것들은 내 만족을 위한 목표다. 그러나 그걸 보고 박수치고 칭찬해 주고 때로는 시기 질투하는 동반자들이 없더라도 과연 그렇게 꼭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까.

잡힐 듯 잡힐 듯 절대 잡히지 않아서, 자신과의 싸움이라서, 또는 인생을 배울 수 있어서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말들은 너무나 고상하다. 하지만 진짜 그게 전부일까.

속을 뒤집어 놓고 보면 골프에 미치는 이유에는 거의 대부분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또 남을 이기고 싶은 강한 자극이 숨어 있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어깨 한번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다.

러프에서 뒷땅을 친 뒤 급히 고개를 들어 누가 봤는지 확인하는 심리, 차마 눈을 돌려 확인은 못해도 금방 가마에서 빼낸 숯불 앞에 앉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신체적 변화는 골프가 결코 자기 자신과의 싸움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오죽하면 일요일에 골프 치는 성직자에게 가장 큰 벌이 홀인원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농담까지 나왔을까. 마구 자랑하고 싶지만 어디 가서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일이니 그만한 벌이 없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매번 기를 쓰고 경쟁했던 골프 친구들을 두고 미국으로 유학 갔던 한 동료의 고백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훌륭한 샷을 했을 때 배 아파하고, 미스 샷 했을 때 박수 치며 좋아했던 악동 친구들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골프가 진정으로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라면 아무도 보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홀인원이 형벌일리 없고, 내 샷 훌륭해지는데 만족하면 그뿐이지 친구들이 아쉬울 리가 없을 것이다. 골프는 결코 자신과의 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프로 선수들도 다르지 않다. 궁극적으로 자기 스코어 최고로 잘 내는 게 목표라고는 하지만 여러 명이 경쟁해 순위를 다투고 그 순위에 따라 상금을 나눠 가지는 만큼 누군가 보다 잘 해야 하는 것이 프로골퍼들의 숙명이다.

결국은 남들과 경쟁하기 위해 자신과 싸우며 기량을 연마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골프의 속성인 것이다.

다시 그 미국인을 만나면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세상에 박세리와 김미현 두 선수만 있는 것처럼 대결 구도를 만든 것은 잘못일 수 있다. 그들이 경쟁해야 할 다른 선수들도 수없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그 경쟁구도는 분명히 존재했고 두 선수에게, 나아가 대한민국 골프 발전에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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