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비극…성추행 시달리다 극단 선택한 여군 대위[그해 오늘]

2013년 육군 모부대 발생…전입 직후부터 男직속상관 괴롭힘
지속적 추행·폭행·망신주기 시달려…"같이 잘까" 요구도 받아
軍법원 1심서 '집유'→사회적 분노 폭발…2심서 결국 '실형'
  • 등록 2023-04-08 오전 12:01:00

    수정 2023-04-08 오전 12:01:0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4년 4월 8일 오후. 대전 유성에 유치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한 장교의 안장식이 열렸다. 이날 현충원 묘역에 안정돼 영면에 들어간 이는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육군 15사단 소속 A대위(여성, 당시 28세)였다.

A대위의 안장식이 2014년 4월 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려 현충원 의전단원이 영현을 묘역으로 봉송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대위는 직속상관인 노모 소령(남, 당시 36세)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하고 성관계 요구를 받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하며 스스로 생일 마감했다.

노 소령은 A대위가 2012년 12월 육군 15사단에 전입했을 당시부터 직속상관이었다. 그는 A대위를 표적 삼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성추행, 성희롱은 물론 공개적인 망신주기 등을 통해 A대위를 코너로 몰았다.

괴롭힘은 2013년 5월부터 심해졌다. 노 소령은 A대위의 업무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병사들이 있는 사무실에서 “정신지체 장애인하고 일하는 것 같다”, “미련한 여자 소 같다”, “이래서 여군은 쓰는 게 아니다. 너 같은 새끼가 일을 하니 군대가 욕을 먹는다”, “어떻게 대위를 달았냐”, “나가 죽어버려” 등 공개적 모욕을 반복했다.

성적 요구 거부하자 노골적 괴롭힘 더욱 심화

또 A대위의 장비착용을 도와준다며 신체를 만지며 추행을 하기도 했다. 아울러 어떤 날에는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주먹으로 팔 부위를 때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A대위에게 본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사무실에서 A대위와 단둘이 있을 때 “하루종일 같이 있는데 의도도 모르냐. 같이 잘까” 등의 성희롱을 했다.

결국 이 같은 계속된 괴롭힘에 A대위는 질책을 받지 않기 위해 잦은 야근과 휴일근무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평소 명랑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업무수행에 책임감과 성실한 자세를 보였던 A대위는 계속된 노 소령의 괴롭힘에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결국 2013년 10월 16일 부대 옆 주차장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4년 4월 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A대위 안장식에 동료 여군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 여군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뉴시스)
A대위는 유서에 노 소령으로 당한 피해를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노 소령이 10개월간 거의 매일 야근을 시켰으며 ‘미친 X’, ‘색기가 흐른다’는 등의 발언을 하거나 군용 허리띠를 채워준다며 뒤에서 끌어안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또 노 소령이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 편하게 해 주겠다”며 성관계를 요구해 이를 거절하자 그 뒤로도 계속 야근을 시키며 괴롭혔다고 적었다.

군사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노 소령을 하루 뒤 구속했다. 노 소령은 구속 이후에도 혐의를 부인했다. 군검찰은 노 소령에 대해 군인 등 강제추행, 폭행, 모욕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정치권 등 각계가 나서 노 소령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지만 군사법원의 1심 판결은 기대를 벗어났다.

다른 피해 여군들의 추가 고소까지 더해졌지만 육군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2014년 3월 20일 주요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노 소령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의 솜방망이 판결을 내렸다. 추행의 정도가 중하지 않고 초범인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 양형의 이유였다. 결국 노 소령은 구속 5개월 만에 석방됐다.

軍, 사회적 분노 들끓자 사망 5개월만에 순직 인정

유족은 물론 정치권 등 각계까지 1심 판결에 강하게 반발했다. 여성 국회의원들은 1심 판결과 관련해 국방부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판결 후폭풍이 이어지던 2014년 3월 26일 육군본부는 뒤늦게 A대위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이 결정으로 A대위는 뒤늦게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지만 아직 가해자 노 소령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라는 숙제가 남아있었다. 군검찰도 1심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가해자 노모 소령의 1심 판결이 나온 직후인 2014년 3월 2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A대위 추모제에서 한 시민이 영정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족을 도운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항소심이 진행되는 도중 관련 기관 전문가 7명에게 A대위의 일기장과 유서 등을 토대로 심리부검을 의뢰해 극단선택의 직접적 원인이 노 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한 우울장애라는 결과를 받았다.

고등군사법원은 2014년 12월 18일 노 소령에게 1심의 집행유예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노 소령을 법정구속했다. 노 소령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015년 7월 9일 형을 그대로 확정했다.

유족은 형사재판 2심 판결 이후인 2015년 4월 노 소령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민사소송 1심 재판부는 2016년 3월 “노 소령의 가혹행위는 A대위의 극단적 선택의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며 국가와 노 소령이 합심해 5400만원을 유족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 법원은 “유족이 국가보훈처로부터 보상금을 지급받고 있으므로 국가배상법상 유족의 청구가 제한된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양측 모두 상고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한편, 노 소령에 대한 1심 솜방망이 판결은 당시 군사법원 판결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이후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며 결과적으로 2022년 고등군사법원 폐지와 군대 성범죄의 민간 법원 이관이라는 군사법원 개혁안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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