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호 기자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가 항체약물결합(ADC) 기반 항암제 ‘트로델비’(성분명 사시투주맙 고비테칸)에 대한 적응증 확대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일본 다이이찌산쿄의 동종 약물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트주맙 데룩스테칸)가 더 인정받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ADC 약물을 구성할 때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항체의 타깃 능력에서 엔허투가 트로델비를 앞서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레고켐바이오(141080)도 엔허투와 같은 트라스트주맙을 뼈대로 하는 ‘LCB14’의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
트로델비·엔허투, 올해 美-EU서 맞대결 본격화
ADC는 항체와 접합체(링커), 약물(톡신 혹은 페이로드) 등으로 구성된 융합 플랫폼이다. 트로델비나 엔허투는 모두 톡신을 특정 부위에만 결합하게 만드는 2세대 ADC 기술로 개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트로델비는 암의 성장이나 분열, 전이를 돕는 Trop-2 수용체를 타깃하는 단일클론항체 사시투주맙과 국소이성질화효소(토포이소머라제) 저해제 계열의 고비테칸을 결합한 물질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와 유럽의약품청(EMA) 등이 각각 2021년 4월과 11월에 치료 이력이 있는 유방암 환자나 절제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삼중음성유방암 환자 대상 치료제로 트로델비를 승인했다.
엔허투는 트로델비보다 앞선 2019년 미국에서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HER2) 양성 유방암 환자 대상 3차 치료제로 승인됐다. 일본(2020년)과 유럽연합 및 호주(2021년) 등에서도 해당 약물이 같은 적응증을 획득했다. 승인 시점에 비춰 볼 때 사실상 올해부터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에서 엔허투와 트로델비 등 두 약물의 맞대결이 본격화된 것이다.
“트로델비 대비 압도적 효과, 엔허투 승리 예상”
13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트로델비와 엔허투 모두 적응증 확장으로 매출 확대를 노리고 있다. 엔허투가 지난 8월 HER2 저발현 유방암 환자 대상 적응증과 HER2 양성 비소세포폐암 적응증을 확대 승인받았다.
선제적으로 적응증을 확대한 엔허투의 매출이 급성장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엔허투의 글로벌 판권을 가진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에 따르면 2021년 엔허투의 미국 내 매출은 4억2600만 달러(당시 한화 약 5550억원)이다. 스위스 크레디스스위스증권은 적응증과 판매 지역을 확대한 엔허투의 매출이 1~2년 내로 3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달 19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도 HER2 저발현 유방암 환자 및 전이성 유방암이나 위암 환자 대상 3차 치료제 등의 적응증으로 엔허투를 승인했다.
길리어드에 따르면 HR 양성 및 HER2 음성 유방암 환자 대상 트로델비를 투여한 결과 질병 진행과 사망 위험을 각각 34%와 21%씩 감소시키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무진행 생존기간(PFS)은 5.5개월로 분석됐다. 하지만 엔허투 역시 이와 같은 적응증으로 임상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다이이찌산쿄는 HR 양성 또는 HR 음성인 HER2 저발현 유방암 환자의 질병 진행과 사망위험을 50%씩 줄이는 것을 확인했으며, PFS 역시 9.9개월로 트로델비보다 길었다.
ADC 개발업계 관계자는 “엔허투의 경우 여러 적응증에 대한 임상 결과를 발표할 때 전문가들이 기립박수를 쳤을 만큼 효과가 좋았다”며 “트로델비가 늘리려는 적응증에서도 엔허투의 효과가 더 높았다. 사실상 트로델비와 올해 본격적으로 맞붙게 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엔허투의 승리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 레고켐바이오가 중국 포순제약에 기술이전한 ‘LCB14’는 엔허투와 같은 트라스트주맙을 항체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포순제약은 LCB14의 중국 내 임상 1상 중간 결과 엔허투의 절반 용량을 넣었을 때, 객관적 반응률(ORR)이 67%로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레고켐바이오 관계자는 “엔허투의 임상 1상 ORR 80%와 우리 약물 절반을 넣었을 때 효과가 큰 차이가 없었다”며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다. HER2 양성, HER2 저발현 위암 및 유방암 대상 적응증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