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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오전 6시 무렵 성수대교를 통과하던 차량 운전자는 이음새를 지날 때 충격이 너무 커서 직접 신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는 교량 진입 통제 등 긴급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오전 7시 38분 성수대교 10번·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됐다. 이 사고로 다리 위를 달리던 버스 1대,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 등 차량 6대의 탑승자 49명이 강 밑으로 추락해 이 중 32명(남성 19명, 여성 13명)이 사망했다.
32명 중 29명의 사상자가 거꾸로 뒤집혀 추락한 16번 시내버스에서 발생했다.버스는 다리의 붕괴지점을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붕괴 부분에 걸쳐졌다가 차체가 뒤집어지며 추락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시공사인 동아건설의 부실 시공, 안전진단 누락 등 과실이 드러났다. 동아건설은 완공 이후 한 차례도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하지 않았고, 사고 두 달 전에는 다리 균열을 확인했음에도 보수를 하지 않았다. 서울시도 다리 점검 등에 소홀했고, 차량 통행량과 중량차량 통행 등에 대해도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해 책임론이 제기됐다.
신고 전화를 장난 전화로 취급한 경찰·소방 당국에 대한 비판도 일었다. 현장에서 초기 구조는 함께 추락한 피해자들 몫이었다.
당시 사고로 추락했지만 목숨을 건져 피해자 구조에 나섰던 의경들은 국가로부터 어떠한 피해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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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연속 붕괴사고가 일어나며 1980년대~1990년대 초에 지어진 건물들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했고 정부는 한강의 모든 다리를 비롯해 전국 건물에 대한 안전 평가를 실시했다.
평가 결과 전체 건물의 2%만이 안전한 상태로 나타났으며 ‘당산철교’는 성수대교가 안 무너졌으면 이보다 먼저 무너졌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실제 당산철교는 철거 공사 도중인 1997년 5월 22일 스스로 붕괴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