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죄에 대한 국가의 칼날은 무디다. 수사당국은 사기 피해액 1억원 미만은 원칙적으로 구속수사를 하지 않는다. 법원의 그리 형량도 높지 않다. 사기죄는 최대 형량이 징역 10년 혹은 2000만원의 벌금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사기죄 양형기준을 보면 빼돌린 금액이 50억원 이상은 돼야 징역 5년 이상을 선고한다.
제2의 조희팔’로 불린 김성훈 IDS홀딩스 대표는 1조원대 유사수신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환율변동을 이용한 투자상품 FX마진거래로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1만 207명으로부터 받아챙긴 돈은 1조 960억원. 피해 회복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가 15년 교도소살이로 챙기는 돈은 연 666억원이다.
지난 7월 다른 농아인들을 상대로 97억원 규모의 투자사기를 저지른 ‘농아인 사기단’ 총책 김모(44·농아인)씨에게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형사1부(재판장 손지호)는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행복팀’이라는 유사수신단체를 만들어 2010~2016년 사이 농아인 150여명으로부터 97억원을 투자받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에서 김씨는 이례적으로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지 못햇다.
피해자들 대리인으로 참여했던 임지웅 법무법인 P&K 변호사는 “사기 피해자들은 범인을 잡아도 대부분 피해금액을 돌려받지 못한다. 범인을 잡아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며 “사기범들 입장에서 보면 50억원을 가로채고 5년을 살고 나오면 연봉 10억짜리 일을 한 셈이 된다”고 말했다.
사기 피해자가 피해 금액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형사소송과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손해를 배상받는 방법뿐이다. 문제는 민사재판의 경우 승소를 위한 증거 확보나 강제집행을 통한 범죄피해재산 추적이 형사보다 어렵다는 점이다. 승소한다고 해도 사기 범죄자가 이미 재산을 타인 명의로 은닉했거나 해외로 빼돌린 경우 이를 회수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최수형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국가가 사기 피해액 회수를 도와주지 않는 현실에서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으려면 개인이 민사소송 등의 방법을 동원할 수 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오랜 법정다툼을 벌어야 하고 회수도 쉽지 않다”며 “사기 피해를 본 이들에게는 또다른 고통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법조계 관계자들은 사기 범죄를 확실히 막으려면 피해액을 확실히 회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정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는 “국가에서 피해금액 회수를 강제하고 있지 않아 사기 가해자가 재산을 은닉한 채 내놓지 않으면 그걸 가져올 수단은 현재로서는 없다”며 “사기 피해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회수를 강제해 회수율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사기 범죄를 줄이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법무부는 지난달 17일 부패재산몰수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 했다. 정부는 개정안에 국가가 몰수·추징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범죄피해재산’의 범위에 다단계 판매나 보이스피싱 등과 같은 ‘특정사기범죄’로 취득한 재산을 추가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다단계나 보이스피싱 등의 조직적 사기 피해자들은 민사소송과 강제집행 과정을 거치지 않고 피해금액을 회수할 수 있어 사기범죄 감소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기 범죄에 대한 형량을 높일 필요도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기를 칠때 부담해야하는 위험보다 사기로 벌어들일 이득이 크면 사기범죄를 절대 줄일 수 없다”며 “미국처럼 피해액이 증가할수록 형량이 늘어나는 징벌의 형태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법원은 금융 다단계 사기의 일종인 ‘폰지 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인도인 2명에게 1심에서 각각 징역 517년형을 선고했다. 앞서 지난 2009년 미국 법원은 650억달러(약 81조원) 규모의 폰지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에게 징역 150년형이 선고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 맨해튼 연방법원 데니 친 판사는 선고공판에서 “사악한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며 이같은 형량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