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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로자처럼 아낌없이 애정을 베푸는 사람, 현실에서는 만나기 어렵죠.”(양희경) “제게는 선생님이 로자 같아요(웃음).”(이수미)
국립극단의 2019년 첫 연극 ‘자기 앞의 생’(2월 22일~3월 23일 명동예술극장)에 출연하는 배우 양희경(65), 이수미(46)는 요즘 마치 한 몸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두 달 전 처음 만났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다. 주인공 로자 역에 더블 캐스팅된 두 사람은 무대에서 함께 연기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서로의 연습을 지켜보며 힘이 돼주고 있다.
◇‘공쿠르 상’ 수상작 연극에 더블 캐스팅
최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양희경은 “더블 캐스팅이면 상대 배우와 같이 가야 한다”며 “수미와 한 몸으로 움직이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배의 애정 가득한 말에 이수미는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때 선생님을 만나 큰 힘을 얻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이처럼 서로를 챙기고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작품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은 파리 슬럼가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유대인 보모 로자의 이야기.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1975년 발표한 작품으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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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는 연극계의 대선배인 양희경과 같은 역에 캐스팅됐다는 것만으로도 부담감이 컸다. 1995년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에서 본 무대 위 양희경을 감명 깊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던 그였다. 국립극단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도 언더스터디(대역)로 출연하는 줄 알았단다. 이수미는 “국립극단에서 ‘안 한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라고 간곡히 부탁해 덥석 출연을 하게 됐다”며 “대본은 밋밋하게 느껴졌는데 막상 해보니 참 쉽지가 않다”고 털어놨다.
작품은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로자가 부모 없는 아이 모모를 키우는 과정을 통해 인간애를 잃어가는 현대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35년 동안 몸을 팔아야 했고 지금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로자는 상처로 가득한 인물이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애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양희경의 말대로 요즘 세상에 쉽게 만날 수 없는 인물이다.
◇“수미는 심지가 달라”…“선생님 말씀에 큰 힘”
작품은 80여 년 역사를 가진 연극 전용극장 명동예술극장에 오른다. 1985년 연극 ‘한씨연대기’로 데뷔해 34년간 배우의 길을 걸어온 양희경이 명동예술극장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희경은“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다 올라봤으면서도 한 번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다”며 “학생 시절 명동예술극장에서 한창 연극을 보던 1970년대 초반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말했다.
이수미는 작년부터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활동하며 ‘텍사스 고모’ 등의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양희경은 “수미는 워낙 심지가 다른, 깊이 있는 연기를 잘 해내는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이수미는 “연습하면서 힘들어할 때 선생님이 ‘너는 남에게 없는 깊이와 뚝심이 있으니 뻔뻔하게 자신 있게 해’라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정말 힘이 됐다”며 “대본 앞에 선생님의 말을 적어놓고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양희경은 “‘자기 앞의 생’이라는 제목이 주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문득 두 배우가 생각하는 ‘자기 앞의 생’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양희경은 “늘 현실에 충실하고자 해서 내 앞의 생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며 웃었다. 반면 이수미는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크다”고 털어놨다. 이수미의 기운 없는 모습에 양희경은 “걱정하지마 수미야, 앞으로 더 잘 될 거야”라며 다독였다. 서로를 감싸 안는 두 사람은 이미 무대 위 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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