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일반고]일반고 몰락 왜?…학종 확대로 우수학생 이탈

자사고·특목고에 우수 인재 쏠려…일반고 붕괴 위기감
매년 15명 이상 서울대 보내던 일반고, 지금은 반토막
“옛 명성 어디로” 경기고도 서울대 합격 상위 30위 밖으로
  • 등록 2018-08-17 오전 5:00:00

    수정 2018-08-17 오전 5:00:00

[이데일리 이서윤]
[이데일리 신하영·김소연 기자] 서울소재 A고는 10년 전만 해도 서울대 합격자를 매년 10명 이상 배출해온 명문고다. 하지만 해마다 서울대 합격자 수가 줄더니 올해는 5명에 그쳤다. 이 고교 관계자는 “서울대 합격자 10명 이상을 배출하는 일반고는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16일 이데일리와 종로학원하늘교육이 분석한 ‘2007~2018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배출 상위 30개교 현황’은 일반고의 추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7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배출 상위 30위에 포함된 △보성고(15명→8명) △세광고(14명→8명) △동북고(13명→5명) △서라벌고(13명→6명) △능인고(13명→2명)는 올해 서울대 합격자 수가 한 자릿수로 줄었다. 당시 서울대 합격자수 15위(16명)에 올랐던 경기고는 2015년 이후 아예 상위 30위 고교 명단에서 빠졌다.

서울대 정시 축소 이후 일반고 출신 합격자 감소

서울대가 2013학년부터 수시 비중을 80%까지 올리면서 상위 30개교 중 일반고 수는 4곳(2013), 2곳(2014), 5곳(2015), 5곳(2016), 6곳(2017)으로 줄곧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올해 서울대 합격 상위 30개교 중 일반고는 5곳으로 15.6%에 불과하다.

서울대 진학 실적은 고입시장에서 해당 고교를 평가하는 지표다. 일반고의 경우 서울대 입학실적이 하락하면서 우수 학생이 진학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부터 2010년까지 2년간 서울에서만 27곳의 자사고를 신설, 고교서열화가 고착된 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확대된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일반고 추락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의 경우 2013학년부터 신입생 10명 중 8명을 수시·학종으로 뽑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해 고려대(62.8%)·서강대(51.7%)·경희대(50.6%) 등 서울 상위권 대학의 2019학년도 학종 선발비율은 정원의 50%를 넘는다.

일선 교사들은 이러한 입시 변화가 일반고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10여년 넘게 일반고에서 진학부장을 맡고 있는 이선영(가명·58) 교사는 “학종이 상위권 대입전형에서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일반고에서는 서울대 합격생을 서너명 배출하기도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학종은 학교와 교사에 대한 평가” 지적도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은 학종이 내신뿐 아니라 비교과 영역(동아리·봉사·독서활동·수상실적 등)까지 종합 판단해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전형이어서다. 고교 3년간의 활동이 희망 학과(전공)와 연관성을 가져야 대입에 유리하기 때문에 소속 학교의 교육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교사들은 다양한 교육과정을 갖춘 특목고·자사고의 재학생이 학종에서 유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학종은 학생이 아닌 학교와 교사에 대한 평가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일반고의 추락과는 반대로 자사고는 서울대 입학실적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0년 전국단위 자사고로 개교한 하나고는 첫 졸업생을 배출한 2013학년도에 서울대 합격생 44명을 배출하며 전국 7위에 올랐다. 이어 해마다 60명(2014)·54명(2015)·58명(2016)·54명(2017)을 기록 매년 5위 안팎의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는 서울대 합격자 55명을 배출해 서울예고(67명)·서울과고(57명)에 이어 3위에 올랐다.

2005년 개교한 용인외대부고(전국단위 자사고)도 첫 졸업생을 배출한 2008학년도에 21명을 서울대에 보내면서 상위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6학년도에는 77명을 서울대에 보내 전국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74명(2017)·55명(2018)의 합격자를 배출하면서 빅3로 자리 잡았다.

배영준 보성고 교사는 “중학교 때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이 자사고·특목고로 빠져나가면서 일반고에 인재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자사고에 인재 쏠림현상이 심화하면서 대학도 우수 재원을 뽑기 위해 자사고 출신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고 살리기 전제돼야 공교육 정상화”

교육 전문가들은 일반고 살리기가 전제돼야 공교육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전체 고3학생 56만8075명 중 일반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77.1%(43만7852명)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고교 다양화 정책 이후 전국적으로 자사고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우수학생을 뺏긴 일반고는 황폐화됐다”며 “고교학점제 등을 통해 일반고에 가더라도 교육과정에 대한 다양한 수요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소재 한 일반고 진학부장은 “이미 특목고가 수월성 교육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사고는 교육평등 차원에서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가 17일 발표하는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에서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 대입 전문가는 “내신에 실패한 학생들에게 패자 부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정시 비중을 40%까지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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