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철강 설비줄여라'..난감한 업계(종합)

  • 등록 2016-09-28 오후 6:51:04

    수정 2016-09-28 오후 11:40:28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간담회에서 허수영(왼쪽) 석유화학협회 회장 겸 롯데케미칼 사장 등 업계 대표들이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주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사업재편 및 설비 통폐합을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성문재 최선 기자] 정부가 전통 굴뚝산업인 석유화학과 철강산업에 대한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놓은 가운데 두 업계 모두 서운하다는 반응이다. 일부 제품군에 감산이나 자발적 재편이 필요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석유화학업계는 이미 작년에 일부 불황 품목의 생산량을 감축하는 등 선제 노력을 보였지만 결국 감산, 설비 감축, 더 나아가 업체간 시설 통폐합까지 거론되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철강업계는 감산 이후 중국에 시장을 내줄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했다.

감산했는데 설비 통폐합까지..아무말 못하는 석화업계

28일 정부가 인용해 발표한 외부 컨설팅 업체의 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보면 석유화학업계에서 가장 구조조정이 시급한 품목은 폴리에스터 섬유와 페트병의 원료로 쓰이는 테레프탈산(TPA)인 것으로 분석됐다. 수출 균형과 시장 상황을 고려해 업체간 설비 통합을 통해 효율적인 설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TPA 생산 업체인 한화종합화학, 삼남석유화학, 태광산업(003240), 롯데케미칼(011170), 효성(004800) 등은 업계간 설비 통합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컨설팅을 맡은 베인앤컴퍼니는 지난해 정부의 감산 권고에 따라 올해 생산량을 생산능력 대비 10~30%씩 줄인 업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산이 아닌 ‘설비 통합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의견을 내놨다. 일례로 한화종합화학은 올해 생산라인 4개 중 1개를 가동정지해 생산량을 40만t 줄였고, 삼남석유화학은 2개 라인을 멈춰 60만t 생산규모를 축소시켰다. 태광산업도 생산목표를 10만t 줄였다. 생산능력에 비해 총 110만t을 줄인 상황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단순히 제품을 감산하는 것은 되레 원가 경쟁력을 훼손시키기 때문에 업체간 생산설비 통합을 통해 일부 업체만 적정량을 생산하는 방식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라며 “이런 방향성에 대해서는 업계 내에서도 논의가 돼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최종적인 안이 나오지 않아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정부의 감산 유도에 따라 생산량을 줄인 상황인데, 여기서 더해 인위적으로 생산설비를 통폐합하라는 것은 시장주의 원칙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진해운(117930)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업계는 더욱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간담회를 가진 석유화학업계 CEO들은 향후 구조조정 방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부의 방침에 맞춰 업계가 조율을 할 것”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업계는 현재 호황기를 보내고 있는 데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하기 때문에 불만이든 찬성이든 공통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면서 “최근 해운업 구조조정을 보면서도 느낀 바가 없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중국이 위협하는데..시장 뺏길까 우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연구용역을 거쳐 마련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내용 중에서는 후판 생산설비 감축 및 매각을 놓고 철강업계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3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올해 수주 목표를 15%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 등 후판의 주요 수요처인 조선산업이 유례없는 불황에 빠지면서 이같은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국내 철강업계는 이미 수년전부터 선제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수급 상황에 맞춰 가동률을 탄력적으로 운용해왔다. 포스코(005490), 현대제철(004020), 동국제강(001230)의 국내 후판 생산능력은 연 1200만t 정도지만 실제 생산량은 약 900만t 수준으로 추산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업체 자체적으로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설비를 폐쇄하는 것은 고용 문제도 뒤따르고 철강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현재 조선업황이 좋지 않다고 조선용 후판 관련 설비를 폐쇄 또는 매각하면 향후 조선 경기가 회복됐을 때 중국에 안방을 그냥 내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조강생산량 세계 1위이자 이웃 국가로서 한국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국내 유통되는 철강재 중 40% 정도가 수입산이며 중국의 비중이 가장 크다.

그럼에도 국가적인 보호장벽은 전무하다. 최근 중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이 경쟁적으로 수입 철강재에 관세 폭탄을 매기며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철강사들이 정부의 설비 감산 방안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급과잉이나 구조적으로 과잉 투자돼있는 부분, 시황 불황이 지속돼 수요가 침체된 점 등으로 인해 업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큰 원칙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각 개별기업들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할 것인지 하는 부분까지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며 “기업들도 충분히 감산이나 재편을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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