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차관 퇴임사.."권력은 여의도로 가버렸다"

이관섭 차관 "정부는 세종에, 권력은 여의도에"
"여의도 권력에 대한 현실적 실용적 고민해야"
"시장 이길 순 없어..시장 고려 없는 정책 필패"
"냉정하게 실패한 정책 돌아봤으면"
  • 등록 2016-08-16 오후 8:15:25

    수정 2016-08-16 오후 8:15:25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사진 가운데, 출처=산업부)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이대로 가면 정부 정책으로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입니다.” 30여년 몸 담은 공직을 떠나는 이관섭(55·행시 27회)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의 퇴임사는 짧았다. 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관료들도 변해야 한다는 당부였다.

이관섭 1차관은 1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권력이 정부에서 정치권이나 시장으로 이동된 시대상에 맞춰 정부 정책을 시의적절하게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이 차관은 “확실히 권력이 정부에서 여의도나 시민단체로 가버렸다. 우리는 세종에 와 있고 권력은 여의도에 있다”며 “이런 환경이 어렵더라도 정부가 현실적 실용적인 고민을 많이 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 차관은 “제 경험상 보면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순 없을 것 같다”며 “시장에 맞게 정책을 세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효과, 이득 없이 가치만 추구하는 정책들은 결국 성공할 수 없다”며 “성공한 정책보다는 실패한 정책이 많았다. 왜 우리가 실패했는지 냉정하게 돌아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 차관은 “정부가 계획을 자주 많이 세우다 보니 탈이 난다”며 단기적인 계획을 자주 짜는 게 후유증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몇 년 내에 달성하려고 계획을 많이 세우지만 10년이 지나도 바뀌는 게 없었다”며 “계획을 길게 세워서 조금씩 바꿔 나가야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차관은 “(15~64세)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든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정부 정책으로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라며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효과 있는 정책을 (미리) 꾸준히 추진하지 않으면 (침체된) 일본과 같은 누를 범하게 될 것”이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는 “산업부 정책만으로는 당면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면서 “교육, 사회, 복지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는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차관은 수차례 공직을 떠날 생각도 있었지만 마음을 다잡은 개인적인 소회도 소개했다. 그는 “사적인 일로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30여 년간 공무원 생활을 계속하도록 한 것 같다”며 “공적인 일을 한다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공직 초기에 수출 실적이 연간 300억불도 안 됐는데 지금은 5000억불로 엄청나게 성장했다”며 “그동안 수출에 조금은 기여했으리라고 생각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는 후배 공직자들에게 “개개인이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해야 나라가 행복하다”며 “나랏일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행복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군 복무를 끝내고 막 제대하는 군인과 같은 심정”이라며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그것보다 더 큰 설렘을 가지고 떠난다”면서 퇴임사를 마무리했다. 신임 1차관에는 정만기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비서관이 임명됐다.

△대구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하버드대 석사 △산업자원부 디지털전자산업과장, 산업기술정책과장 △기획예산처 공공혁신본부 경영지원단장 △지식경제부 산업정책관, 에너지산업정책관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 1차관(2014.7.15~2016.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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