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투자 이야기를 할 때 으레 나오는 말은 단연 코인 관련 질문이다. ‘코인 투자는 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으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라거나 ‘배포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분류 당하는 일도 적잖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상화폐 투자를 단순 부정하기엔 시장에서 거래되는 규모가 너무 컸다. 적게는 몇조, 많게는 수십조 단위로 거래되는데다 투자에 일가견 있는 국내외 투자 큰손들까지 가상화폐 투자에 나서다 보니 의심은 확신처럼 보였다. 그렇게 가상화폐 투자는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투자처로 인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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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를 키우며 자본시장 유망 투자처로 급부상하던 가상화폐 시장에 치명적인 균열이 생긴 것은 얼마 전이다.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USD(UST) 폭락 사태가 방아쇠를 당겼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에 자취를 감춘 자산만 약 58조원 규모다. 역대급 대혼란에 책임져줄 사람 하나 없는 상황을 모두가 망각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원인 모르는 폭락을 두고 일각에서는 ‘성장통을 겪는 것’이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긍정적이지 않으면 돈 벌 수 없다’지만 객관적인 사태 파악이나 반성 없이 현실 부정의 강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로선 자신이 개발한 가상화폐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난 발언처럼 보였다. 돌이켜보면 ‘지금 엑시트(자금회수) 하지 않으면 모두 먼지가 될 것이다’는 경고로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다.
58조원 규모 가상화폐가 휴짓조각이 되자 나온 반응은 황당하게도 ‘마음 아프다’였다. 권도형 대표는 ‘가상화폐 95% 멸망설’ 발언 8일 만인 1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내 발명품(루나·UST)이 여러분 모두에게 고통을 줘 비통하다”고 밝혔다. 폭락의 원인이 뭔지도 모르고,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할 수 꺼낸 말은 미안하다 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성장통’ 믿어야 할까…투명한 정보 공개 선행돼야
가상화폐를 유망 투자처로 보고 베팅한 투자자들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맞았다. 1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내 4대 코인 거래소에서 루나를 보유한 투자자는 약 20만명으로 추산된다.
‘내 돈은 어디 있느냐?’ 따지고 싶지만 딱히 방법도 없다. 현행법상 정부가 마련한 가상자산 관련 법률은 가상화폐를 통한 자금 세탁만 처벌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런 사태가 국내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소비자 보호를 담은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내년에 제정한 뒤 2024년에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성장통’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로 국내 VC 업계에서 단기간에 도약한 해시드 김서준 대표는 지난 11일 “충분한 유동성이 공급되면 테라 가격은 1달러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며 여전한 믿음을 보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임을 알고도 돈을 넣은 투자자들의 잘못도 없진 않다. 그러나 잠재력을 믿고 투자한 이들 다수가 수긍할 분석이나 배경이 뒤따라야 한다. 수개월 전부터 업계 안팎에 불거진 의구심에도 ‘네 들이 잘 몰라서 그렇다’로 때우기에는 손실 규모가 너무 크다.
원인도 모르는 가상화폐 폭락을 마주한 상황에서 향후 관련 투자가 이어질 수 있느냐를 두고도 설왕설래 중이다. 잃어도 그만인 ‘모험자본’ 성격으로 집행한 돈이라 해도 수익률 사수가 목적인 재무적투자자(FI)들 입장에서도 투자처로 바라보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제도권 자본시장 입성까진 아니더라도 투명한 정보 유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 대학원 교수는 “(가상화폐 투자는) 자정 활동이 생명인데 현재로선 그런 시스템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며 “시장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대로 된 정보가 유통돼야만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