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특례제한법 개정하자니 '늑장대응' 부담…文정부 딜레마

출구 안보이는 조세회피처 논란
경제특구 투자 외국기업에 稅혜택…"내국인 역차별" 개정 요구도
관계부처 회의에도 대책 못내…정부, 계속 EU 설득한다는 입장
  • 등록 2017-12-11 오후 5:21:12

    수정 2017-12-11 오후 7:31:11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유럽연합(EU)이 한국을 조세회피처(공식 명칭 비협조적 지역)로 지정해 국제적 망신을 줬지만, 아직도 우리 정부는 제대로 된 출구 전략을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로 지적된 조세 제도를 고칠지, 유지할지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신중하게 종합 검토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1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기재부·외교부·산업부는 지난 8일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조세회피처 관련 논의를 했지만 대책을 확정하지 못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내외 기업들의 동향과 관련해 상황을 공유했다”며 “투자제도 개선방안이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당인 박광온 민주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도 통화에서 “아직 그런 (법 개정 논의) 단계가 아니다”며 “기재부가 고심하고 있다. 조금 더 (조세회피처 지정 관련) 영향을 보겠다”고 말했다.

EU, 작년부터 “개정하라”..설득 쉽지 않아

지난해 외국 기업이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직접투자’ 결과 EU 기업의 투자액이 가장 많았다, 신고액 기준, 억달러.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앞서 EU는 지난 5일(현지시간) 한국의 경제자유구역(경제특구) 등의 외국인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제도가 유해조세제도라고 밝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 6일 이 같은 조세회피처 지정에 대해 “아직 크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11일 여당에서도 기재부가 대책을 고심 중이라고 밝힐 정도로, 사태는 장기화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한·EU 공동위원회 등을 통해 계속 EU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EU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 담당 국장이 지난주에 EU로 급파됐지만 현재까지 낭보는 없는 상황이다. 앞서 EU는 지난해 조세회피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정부에 내년 말까지 관련 제도를 개편할 것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이 제도는 ‘외국인투자 등에 대한 조세특례’ 조항(제121조의2)이 포함된 조세특례제한법이다. 이 법은 새만금 등 경제특구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최대 7년간 일정 비율로 소득세·법인세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외화 유치를 위해 ‘특별 대우’를 한 것에 EU가 제동을 건 셈이다.

세법 전문가들은 “EU는 ‘시간은 EU편’이라고 생각해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U가 비EU 회원국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게 황당하지만, 한국으로선 EU 주장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산업부가 발표한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 동향’에 따르면 전체 투자액(212억9900만달러) 중 EU 기업의 투자액이 73억9600만달러(34.7%·신고액 기준)로 가장 많았다.

게다가 국내에서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안종석 선임연구위원은 ‘고도기술수반사업 등 외투기업 조세감면제도 개편방안’ 보고서에서 “(조세특례제한법은) 내·외국인을 구분해 외국인의 투자에 대해서만 지원하는 것으로서 내국인을 역차별하는 효과가 있다”며 “세계화 사회에서 내국인을 배제하고 외국인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제와서 개정 부담..“탄핵정국서 스텝 꼬여”

외국 기업이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직접투자’는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 추세다, 신고액 기준, 억달러.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정부도 이 같은 한국의 상황과 제도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이제 와서 개정하는데 따른 ‘늑장대응’ 부담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 입장에선 최근 법인세를 올렸는데 곧바로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대기업 감면을 해줄 수 있겠는가”라며 “탄핵 정국에서 제대로 대처를 못하면서 이번에 스텝이 꼬여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얘기를 했지만 기재부는 세수가 줄어든다며 부정적 의견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EU의 제재가 없는 것을 이유로 ‘버티기 전략’으로 가기보단 이제라도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홍진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 투자 제도가 55년이나 유지되다 보니 제도를 손대면 안 되는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며 “국내의 신산업·고부가 서비스업종에 한정해 경제특구 지원을 하면 역차별을 해소하고 투자 유치도 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관련된 부처, 지역이 많고 대외적 파급 여파도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보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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