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게 조사하겠습니다"..공정위가 쓴 '반성문'

위압적 태도의 조사공무원, 견책· 파면 등 징계
공문 범위 벗어난 조사에는 '거부권' 행사 가능
조사 끝난 뒤에는 담당 과장이 업체에 '해피콜'
  • 등록 2015-10-21 오후 4:24:42

    수정 2015-10-21 오후 5:31:10

[세종=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은 피조사업체 A씨는 조사공무원 B씨의 위압적인 태도에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B씨가 사무실에 갑자기 들이닥쳐 다짜고짜 이런저런 자료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자료가 없다고 하면 은폐, 은닉 등의 단어를 써가며 A씨를 호되게 나무랐다. 공무원을 상대로 함부로 언성을 높일 수도 없는 일. 조사가 끝난 뒤 A씨는 “사흘간의 짧은 조사였지만, 하루 하루가 숨막히는 나날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앞으로는 이같은 공정위 조사공무원의 강압적인 행태가 사라질 전망이다. 과잉조사와 대형사건 패소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공정위가사건처리 절차를 대폭 개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21일 발표한 사건처리절차 개혁방안(사건처리 3.0)은 불합리한 조사 관행을 바로 잡고, 기업의 쓸데없는 조사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동안의 조사관행이 강압적이고 불합리했다는 것을 자인한 것으로, 사실상 공정위가 쓴 ‘반성문’이다. 개혁방안은 피조사업체의 방어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대거 담겼다. 공정위가 업체에 보내는 공문만 해도 구체적인 법 위반 혐의와 조사대상의 사업자명 및 소재지를 명기해야 한다. 예컨대 조사대상이 삼성전자(005930)라면 지금은 회사명인 ‘삼성전자’만 공문에 명기하지만, 앞으로는 삼성전자 광주공장 등으로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

업체는 공정위 조사내용이 공문에 쓰인 범위를 벗어날 경우 ‘조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 현장조사에서부터 진술조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조사 전 과정에 걸쳐 변호인을 대동할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현장조사를 진행한 공무원은 조사 시작, 종료시각, 제출받은 자료 목록을 담은 ‘현장조사 과정 확인서’를 작성하고, 해당 업체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공무원이 위압적인 조사 태도를 보이거나 규칙을 위반했다면 해당업체 담당자는 이런 사실을 확인서에 기재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위압을 행사한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면 공무원은 공정위 감사·감찰 조치기준에 의거해 견책, 감봉, 파면 등의 징계를 받게 된다.

‘친절한’ 공정위는 현장조사가 끝난 뒤에는 담당 과장이 피조사업체에게 직접 전화(해피콜)를 걸어 애로사항도 청취한다. 사건 처리가 지연된다는 지적에 담합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조사 개시일부터 6개월 내에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이번 개혁방안에 담긴 내용은 대부분 사실 내부지침으로 기존에 운영돼 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업체들은 이런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번 개혁방안은 내부에서 운영됐던 지침을 고시로 격상하면서 외부로 공개, 피조사업체가 가진 권리를 되찾아줬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공정위는 ‘사건처리 3.0’과 관련한 각종 규칙과 고시 제·개정안을 내달중 행정예고하고, 올해 안에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피조사업체의 권리 강화로 공정위 조사가 애를 먹을 가능성도 커졌다. 지금도 공정위는 일부 대기업들의 노골적인 조사 방해로 난항을 겪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조사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건 처리 기한 단축 등의 과제도 공정위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런 우려에도 공정위가 ‘개혁’을 택한 것은 ‘원칙주의자’인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의 강한 의지 때문이라는 게 공정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이번 개혁방안은 지난 30여년간 지속돼온 사건처리 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이라며 “명실상부한 1심기능을 담당하는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사건처리절차 기틀을 확립했다”고 평했다. 그는 또 “절차하자에 따른 패소도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사건처리 3.0 기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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