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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논란이 된 국회법 개정안 재의요구안의 상정을 앞둔 6일 오전 국회.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는 오전 9시45분이 넘어 끝났지만 서청원 최고위원과 유승민 원내대표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 등 모두가 나간 회의장에서 둘은 10여분간 독대했다.
둘은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 화두가 유 원내대표의 거취임은 자명했다. 두 사람의 독대가 주목 받은 것은 서 최고위원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친박계(친박근혜계)의 좌장 격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 ‘참 얄궂은 운명’을 마주한 둘의 인간적인 신뢰 관계에 더 주목되는 측면이 있어서다. 서 최고위원은 “내가 유 원내대표와 얘기한 것을 여러분 앞에서 말하는 건 온당치도 않고 예의도 아니다”고 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유승민 정국’에서 고뇌가 가장 큰 사람은 다름 아닌 서 최고위원일 것”이라고 했다. 유 원내대표는 ‘탈박(탈박근혜)’을 했지만 서 최고위원과는 여전히 신뢰가 깊다고 한다. 지난 당 원내대표 경선 당시 서 최고위원이 ‘친박 이주영’ 대신 ‘탈박 유승민’ 쪽에 선 것만 봐도 이는 확인된다. 유 원내대표도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아닌 서 최고위원을 지지했다. 둘의 신뢰는 계파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 것이다.
서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여권 인사들은 사태의 당사자가 유 원내대표가 아니었다면 그가 공개석상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를 한다. ‘유승민이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처지가 곤혹스러운 것은 서 최고위원 뿐만 아니다. ‘원박(원조친박)’으로 정치적 고락을 함께 해온 김무성 대표 역시 갈팡질팡하고 있다. ‘주군(主君)’인 박 대통령에 의해 원박 인사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김 대표의 고뇌는 서 최고위원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인간적인 고뇌에 더해 정치적인 유불리까지 고려해야 하는 처지다. 그는 현재 여권에서 가장 앞선 대선 주자다. PK(부산·경남)를 기반으로 한 김 대표는 ‘여권의 심장’인 TK(대구·경북)까지 지지세를 확대해야 대권을 거머쥘 수 있다. TK의 정신적 지주인 박 대통령과는 등을 돌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 원내대표를 떨쳐내기도 어렵다. 유 원내대표는 그가 갖지 못한 개혁 성향이 강해 표(票) 확장성이 뛰어나고, 경제 등 정책에도 밝다. 김 대표는 전임 대통령들과 비교해 지지 기반이 취약하다는 게 중론이다. 김 대표 입장에서는 둘 다 등 질 수 없는 입장인 셈이다.
유승민도 마냥 뭉개기 어려워…“與 분열 부메랑 올수도”
그나마 유 원내대표의 상황은 낫다. 그는 이번 정국을 거치면서 ‘전국구’로 발돋움했다. 논란 여부를 떠나 ‘유승민’ 이름 세글자를 확실하게 새기는데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여의도 정가에는 ‘원내대표 유승민’의 생명이 끝난다고 해도 ‘정치인 유승민’의 생명력은 더 강해졌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상황인 건 아니다. 사퇴냐 버티기냐를 두고 어쨌든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당·청 관계를 이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건 여권 내부에도 공감대가 있다. 사퇴 여부를 뭉개고 갈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여당 한 인사는 “유 원내대표가 계속 버티면 당청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다”면서 “이럴 경우 박 대통령의 탈당도 불가능한 건 아닌데, 그 부메랑은 유 원내대표에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