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의 힘)②반대의결권 `넘어야 할 산 높다`

보유 의결권 미미 `상징적 의미` 못넘어서
`펀드는 단기 시세차익만 관심` 인식 극복도 과제
  • 등록 2008-03-13 오후 4:01:44

    수정 2008-03-13 오후 4:16:35

[이데일리 이진철기자] 펀드가 적극적으로 의결권 행사에 나서는 것은 시대적 추세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펀드에, 구체적으로는 자기가 맡긴 자산의 수익률에 관심이 높아졌고 펀드들은 이러한 고객의 니드에 맞춰야하기 때문이다.
 
펀드자본주의로 대변되는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펀드가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고 펀드자본주의를 열어가는데 있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펀드 지분율 열세..표결시 지배구조개선 시도 좌절 많아

기관투자가들의 보유지분이 재벌총수 지분에 비해 낮다는 것도 반대의결권이 상징적 의미에서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의 반대의결권 행사에 대해 두산그룹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는 지분이 작아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두산계열사가 지닌 지분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결정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외국계인 UBS증권도 "주주의 구성이나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의 동향을 볼 때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005380) 등기이사로 재선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만약 정몽구 회장이 등기이사에 재선임되지 못하더라도, 현대차그룹내에서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며 국민연금의 반대의결권 행사가 사실상 정 회장의 오너십에 별 영향을 미치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장하성펀드)의 경우 대주주에 비해 열세인 지분율을 경영진과 합의를 통해 경영참여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이번 주총에서 경영진과 합의한 삼양제넥스(003940)의 경우 장펀드측 추천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그렇지만 장펀드도 경영진과 갈등을 빚을 경우엔 주총 표대결에서 경영참여 시도가 무산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장펀드는 지난해 3월 벽산건설(002530) 정기주총에서 회사측 추천인사의 감사선임을 반대했지만 원안대로 통과돼 지배구조개선 시도가 실패했다. 벽산건설은 오는 21일 주총에서 경영진측과 장펀드측 추천인사가 각각 감사후보에 올라온 상태여서 양측의 표대결이 예고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벽산건설 대주주 우호지분이 많아 표대결에서 장펀드측이 불리하다는 분석이다.

◇펀드 반대의결권 상징적 의미..경영진과 합의 관건

경영진이 반대할 경우 펀드의 경영참여는 사실상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국내 기업의 보수적인 정서상 펀드 등 제3자의 경영개입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펀드는 에스에프에이(056190)의 지분 6.4%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오는 28일 열릴 정기주총에서 사외이사 2명, 감사 1명을 추가로 선임건을 주주제안했다. 이에 에스에프에이 이사회는 최근 감사선임 안건으로 자신들이 추천한 감사후보와 펀드가 제안한 감사후보 중 1명만 선임키로 했다.

에스에프에이는 현재 정관상 3명의 감사를 선임할 수 있고, 상근감사 1명이 선임돼 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사회 추천 감사후보 1명, 펀드의 주주제안 감사후보 1명 모두가 주주총회에서 과반수의 찬성표를 얻게 되면 감사에 선임돼야 한다. 이에 대해 장펀드는 "에스에프에이 경영진의 이번 감사선임수 축소 결정으로 펀드측이 추천한 사외이사나 감사의 선임을 저지하기 위해 주총이 불공정하게 운영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열린 CJ(001040)S&T중공업(003570), 휘닉스커뮤니케이션 등은 주총에서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지만 모든 안건이 회사측 원안대로 통과됐다.

그러나 양측의 지분율이 팽팽한 경영권 분쟁에선 기관투자가의 선택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동아제약(000640)의 경영권 분쟁에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현 경영진 지지의사를 밝힌 것이 현 경영진 유임으로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곧 기업들이 펀드의 의결권 행사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펀드 경영참여, 단기차익 수단 "NO"..장기성장 투자 독려 바람직 

기관투자가들의 경영참여를 위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대해 아직도 곱지않은 시선을 보이는 것은 과거 일부 외국계 투자자의 단기 시세차익 실현에 악용된 사례가 있다는 것도 작용하고 있다.

2006년 벌어진 KT&G(033780)와 칼아이칸의 경영권 분쟁에서 아이칸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경영참여를 추진했고, 결국 KT&G에 1년여만에 단기차익을 얻고 빠져나가기도 했다. 일부에서 아이칸과의 분쟁을 통해 KT&G의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고 주가가 상승했기 때문에 회사나 다른 주주들 모두에겐 나쁘다고 볼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국민정서는 아이칸이 단기차익만을 얻고 빠져나간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많은 상황이다.
 
이번에 국민연금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의 계열사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 반대의결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시각만 있는것은 아니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해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과다한 배당요구를 자제하면서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를 독려하기도 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기업이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데 돈을 쓴다면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펀드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주가가 오르면 회사도 이득이 아니냐"라며 "기업의 경영진들도 펀드의 경영참여 시도에 무조건적인 반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
☞(펀드의 힘)①기관투자가 견제 시작됐다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 "1차협력사 주물납품價 20% 인상"
☞정몽구 회장 재선임 국민연금 막지 못한다 - U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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