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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우리 코스피시장 종합주가지수(코스피지수)는 무려 19.61%나 추락했다. 집권 2년차에 지수가 일시적으로 1000선을 회복하기도 했지만, 외환위기 사태로 경제가 무너지면서 임기말에는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절인 300선 아래로 폭락하고 말았다. 재임중 마이너스(-) 19.61%라는 코스피지수 성적표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악이었다.
그나마 집권 1년차에는 코스피지수가 27.7% 상승했고 2년차에도 18.6% 올랐지만, 3년차부터 집권 말기까지 3년간 내리 지수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7년 한 해동안 코스피지수는 무려 42.2% 급락했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주식시장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한 김 전 대통령이 재임했던 기간중 증시를 둘러싸고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을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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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증시안정대책
특히 증시안정기금에 동원된 투신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투신사에 자금을 빌려주는 특융을 제공하는 등 특단의 증시안정대책을 내놓았다. 이 덕에 하락하던 주가는 취임식전 이틀간 오름세를 탔지만, 신정부 출범 첫 날 코스피지수는 무려 2.56%나 추락한 655선을 찍었다.
금융실명제
문민정부 출범 이후 시중에서 현금이 사라지는 현상이 가속화됐는데, 이는 김 대통령의 대표 개혁정책이었던 금융실명제 도입에 대한 우려 탓이었다. 특히 실명제 도입과 공직자 재산공개를 앞두고 재산을 은닉하려고 대여금고를 빌리거나 무기명 채권을 사겠다는 문의가 크게 늘었고, 고객 스스로 보유하고 있던 증권계좌를 폐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1993년 8월 김 대통령은 긴급명령을 발동하며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지금은 금융실명제가 정착됐지만 당시만 해도 차명이나 가명계좌가 지점마다 많았다. 금융실명제 발표 이후 차명과 가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시키자 큰손들이 모두 증시를 떠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았다. 실명제가 실시되고 첫 주식 거래가 시작된 8월13일 증시는 오후 2시10분에 문을 열고 단 2시간동안만 거래됐다. 개장초부터 매물이 쏟아져 코스피지수는 하루만에 4.46%나 폭락했고 상장 960개 종목 가운데 917개가 하한가를 찍었다. 공포에 휩싸인 증시는 이틀 연속으로 급전직하했지만, 사흘째 되는 날 한국전력이 하한가에서 벗어나며 진정세를 찾기 시작했다.
IMF 구제금융
당연히 국내 주식과 외환시장은 요동쳤다. 11월6일 코스피지수는 사상 최대 폭락세를 보였고 10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사상 처음으로 달러당 1000원 위로 폭등했다. 이미 연기금 3조원 주식 매입과 종금사에 대한 달러 지원 등 대책을 세웠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11월21일 신임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대통령(YS)은 주가가 떨어지면 안 된다며 외환시장보다 증시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술회했지만, 증시는 277선까지 1년새 거의 반토막 나고 말았다.
외국인 주식투자 확대
김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중 외국인의 주식투자 한도를 획기적으로 늘리기도 했다. 1996년 김 전 대통령은 자본 자유화와 시장 개방을 표방하며 4월에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종전 12%에서 18%로 늘리고 하반기에는 20%까지 높였다. 또 외환위기 공포가 감돌던 1997년 5월에는 이 한도를 기존 20%에서 23%로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도입한 이후에는 1997년 12월11일 자본시장 전면 개방을 단행했다. 당시 외국인 투자한도를 종목당 26%까지 확대했고 개인당 7%까지 높였고 그 해말에는 50%까지 확대됐다. 이로 인해 외국계 자본이 유입되며 국내 외환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지만, 증시는 외국인투자자들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