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땅 네팔, 우리는 '마지막 희망'이라 불렸다

네팔 급파 긴급구호대 27명 8일 귀국
악천후 속 10여일간 시신 8구 수습
"시신 찾으려 마스크 벗고 구조작업"
  • 등록 2015-05-10 오후 7:14:38

    수정 2015-05-10 오후 7:14:38

대한민국해외긴급구호대가 지진으로 폐허가 된 네팔 현장에 들어서고 있다.(이일 대한민국해외긴급구호대 구호팀 대장 제공)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무너진 폐허 곳곳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났다.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구조에 나섰던 생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모든 구조 환경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네팔 지진현장에 급파됐던 대한민국해외긴급구호대(KDRT:Korea Disaster Relife Team) 27명이 지난 8일 귀국했다. 구호대는 지난 달 27일과 2일 1, 2진이 순차적으로 파견돼 10여일 간 시신 8구를 수습했다.

국민안전처 소속 이일(51)·강대훈(47·2진 담당) 구조대장을 귀국한 다음날 만났다. 소방관 근무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인 이들도 “네팔에서의 구조작업은 난관의 연속이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구호대가 탑승한 비행기가 네팔 공항에 착륙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공항은 비좁고 열악한데 이미 해외 각국의 항공기와 구호물품 등으로 가득했다. 벼락이 치고 비가 내리는 악천후까지 겹쳐 구호대는 1시간 가량을 공항 상공을 선회한 뒤에야 착륙할 수 있었다.

구호대가 구조에 나선 곳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동남쪽에 위치한 박타푸르(Bhaktapur)였다. 박타푸르는 네팔 고대왕국이 있던 고도(古都)이자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나 관광객들이 붐볐던 도시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강 대장은 “강원도 대관령처럼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길이 산사태로 뚝뚝 끊겼고, 한국으로 두 문장의 메시지를 보내는데 1시간이 걸릴 정도로 통신 인프라도 엉망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과 같다. 구호대는 내시경 카메라, 삽, 곡갱이로 폐허 곳곳을 파헤쳤다. 중국, 일본 등에서 온 구호대들도 함께 구조작업을 펼쳤다.

시신이 부패해 발생한 악취가 넘쳐났지만 워낙 깊이 파묻혀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온 구호팀들이 포기하고 철수 결정을 내리기 직전 우리 구호팀은 현장에서 시신을 찾아냈다. 이 대장은 “분진이 나더라도 시취(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포인트를 찾기 위해 구호팀 모두 마스크를 벗고 구조작업을 했다”며 “화재연기에 묻어나는 사람 냄새에 민감한 편인데 이번에도 육감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해외긴급구호대가 폐허 속에서 구호 작업을 벌이고 있다.(이일 대한민국해외긴급구호대 구호팀 대장 제공)
우리 구호팀의 시신 수습과정은 해외 구호팀과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취재진들의 시선을 끌었다. 구호팀은 시신을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수습하는 데 중점을 뒀다.

강 대장은 “해가 저물어 가자 네팔 측에서 ‘시체를 절단해서라도 빨리 꺼내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하고 늦게까지 수습작업을 계속했다. 시신이라도 산 사람처럼 구조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시신을 수습하는 작업이 마무리되면 구호팀 전원이 모여 거수경례를 했다. 구호팀은 다함께 행복하고 안전한 곳으로 가시길 기도했다. 우리나라 구호팀이 찾아낸 시신 8구는 이같은 과정을 거쳐 유족들에게 인도됐다. 구호팀의 성의를 다한 구조작업을 지켜본 네팔인들은 “한국 구호팀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라며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이 대장은 “딸의 시신을 찾은 아버지가 우리를 찾아와 ‘나마스떼’(당신의 영혼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안아줬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우리 구호팀은 국민의 성원에 힘을 많이 얻었다. 네팔에 대한 관심도 이벤트를 넘어 오래 지속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 대장은 “72시간 골든타임 내에 신속하게 국제구호에 나서는 시스템이 정착됐으면 한다”며 “네팔에도 한국과 같은 긴급구조 시스템이 채택될 수 있도록 인도적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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