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어른들 잘못이래. 편히 쉬어"…줄잇는 구의역 추모물결

자녀·부모 함께한 추모객 줄이어.."남의 일 같지 않다"
컵라면 대신 초콜릿우유, 건빵, 샌드위치 등 먹거리 쌓여
시민들 "인력부족·안전방치 문제 곳곳에 산적" 비판
빈소에도 시민 발길·매일 저녁 추모행진 열려
  • 등록 2016-06-06 오후 4:02:12

    수정 2016-06-06 오후 4:09:32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오후 서울 구의역 승강장에 마련된 스크린도어 사고 희생자 김모(19)씨 추모공간에 가족단위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데일리 글·사진 전상희 기자] “형 이거 먹고 이제 편히 쉬어”

6일 오후 서울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안전문) 앞에서 초등학교 2학년 쌍둥이 형제가 주머니를 뒤져 과자 한 봉지를 내려놓았다. 쌍둥이 형제의 아버지 이모(45)씨는 “아직 초등학생이라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사회의 부조리한 면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함께 찾아왔다”며 아이들에게 추모쪽지에 붙은 내용을 쉬운 말로 일일이 설명했다. 설명을 듣던 이모(8)군은 노란 쪽지에 “형, 잘못 없어. 착하게 살았으니 괜찮아. 편히 쉬어”라고 쓴 뒤 스크린도어 한편에 붙였다.

지난달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중 사고로 숨진 서울메트로 협력업체 은성PSD 직원 김모(19)씨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연휴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부터 가족 단위 추모객이 많이 눈에 띄었다. 고등학교 2학년 박모(17)군은 아버지와 함께 현장을 찾았다. 박군은 “비슷한 또래의 일이라 남일 같지 않아 아버지에게 함께 오자고 했다”며 “우리가 사회에 나갈 때도 사회가 크게 변해 있지 않을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박군의 아버지 박모(47)씨는 “지인이 지하철 기관사를 했었는데 1인 1조로 근무하다 지하철 사고를 접한 적이 있었다. 혼자 시신을 수습한 트라우마에 결국 기관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았다고 했다”며 “김씨처럼 인력부족과 산적한 업무에 허덕이고 안전이 방치되는 문제는 아직도 곳곳에 산적해 있다”고 비판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경기 파주에서 온 박모(18)군은 한참이나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그는 “나 또한 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에 오게 됐다”며 “‘(고인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 사회가 나아지도록 함께 노력하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구의역에서 1년째 청소업무를 하고 있는 50대 여성 A씨는 “같은 공간에서 일해도 볼 일이 없어 김씨의 얼굴조차 몰랐다. 아들 같은 사람이 변을 당해 슬프다”며 “할머니들이 유난히 많이 찾아와 ‘어린 나이에 불쌍하다’며 많이 울고 갔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구의역 승차장에는 색색의 추모쪽지가 붙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추모공간에는 국화꽃과 함께 초콜릿우유, 건빵, 샌드위치 등 먹을거리도 쌓였다. 김씨는 평소 과다한 업무로 식사시간에 쫓기며 작업을 해왔으며 사고 당시 그의 가방에는 컵라면과 숟가락 등이 있었다.

김씨의 빈소가 차려진 광진구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도 매일 수백명의 시민들이 찾고 있다.

온라인에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이란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됐다. 페이스북 공지로 모인 시민들은 지난 2일부터 매일 오후 8시 구의역에서 헌화와 묵념을 하고 빈소까지 추모행진을 하고 있다.

6일 오후 서울 구의역 승강장에 마련된 스크린도어 사고 희생자 김모(19)씨 추모공간에 고인을 기리는 국화꽃과 먹을거리 등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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