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우이령길에 다녀왔다. 우이령길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경기 양주시 교현리(송추)까지 4.5㎞다. 일단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주차장이 없다. 걷기 여행은 사실 자동차로부터 ‘해방’되는 여행. 굳이 차를 몰고 가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코스는 양주에서 우이동 쪽으로 잡았다. 입구는 국립공원 같지 않고 마을길 같다. 이런 길을 따라 조금 걷다보면 교현 탐방안내소가 나온다. 여기서 인터넷 예약증을 제시해야 한다. 비가 간간이 들이치는 날이었지만 공기는 맑았다. 길엔 마사토를 뿌려놓았다. 길은 제법 넓었다. 탐방객은 많지 않았다. 호젓했다.
초입부터 물소리는 우렁찼지만 계곡은 철조망으로 막혀있다. 군작전지역이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에선 발 담그는 것도 금지하는 곳이 많긴 하지만 접근조차 못하게 돼있으니 탐방객 입장에선 섭섭하다. 간혹 군부대 차량들이 산길을 오가곤 했다. 교현리 쪽에서 보자면 우이령길의 초입은 산길이라기보다는 임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안내문에는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이 도로를 넓혔다고 적혀 있었지만 정작 사진에 나와있는 비문에는 1965년에 미군 공병대가 개통했다고 쓰여있다. 탐방안내소에서 20~30분쯤 오르면 호수와 석굴암이 나타나는데 군부대 유격장이다. 석굴암도 신도증이 없는 사람은 출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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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북한산의 모습은 오봉이다. 다섯개의 새하얀 바위봉우리의 모습을 따서 지은 이름인데 운무에 가렸다 모습을 드러냈다 했다. 우이령길에선 눈보다 귀나 발에 더 신경을 쓰는 게 낫다. 새소리도 들어보고, 9월의 푸른 숲향을 맡아보는 게 좋다. 그게 걷기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길 중간쯤에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비에 젖은 흙길에서 등산화를 벗고 걷는다는 게 즐거울까?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막상 걷다보니 기분이 좋다. 국내에 맨발 산행코스는 대전의 장동 삼림욕장과 순창의 강천산길이 있다. 황토를 지그시 밟고 걸을 수 있는 이런 길들에 비해 우이령길은 굵은 모래알 같은 게 발바닥에 밟힌다. 처음에는 조심스럽지만 조금 걷다보면 맨발 걷기도 재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걷기는 리듬이다. 크리스토퍼 라무르는 걷기를 음악이자 일종의 체육이라고 했다. 맨발 걷기의 리듬은 결코 빠르거나 성급할 수 없다. 음악으로 표현하면 라르고다. 라무르는 <걷기의 철학>에서 ‘느림이란 말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관능적이다. 느린 것은 아름다우며 온전한 관망과 감상을 허용한다’고 썼다. 맨발로 걷다보면 땅에 있는 잎사귀 하나까지 신경쓰인다. 도토리도 나비도, 잠자리도 피해간다. 등산화처럼 마구 밟을 수 없다. 발바닥은 여리다.
라무르는 ‘걷는 사람은 겸허하다’고 썼다. 라무르는 ‘자신을 지배하는, 그리고 삼켜버릴 수 있는 자연의 가운데에서 스스로가 작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걷는 사람을 ‘흙의 사람’으로 규정했다. 겸허란 말은 흙을 뜻하는 후무스(humus)에서 나왔다고 한다. 해서 걷기는 밖을 내다보는 관광이 아니라 자아를 들여다보는 사색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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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잡이
*우이령길은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다. 서울 도봉구 우이동 쪽으로 390명, 양주시 교현리 쪽(송추)으로 390명씩 하루 780명으로 탐방인원을 제한한다. http://ecotour.knps.or.kr/reservation/을 통해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다. 주말은 최소 1주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탐방 예정일로부터 15일 오전 10시부터 하루 전 오후 5까지 예약이 가능하다. 1인당 4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오후 2시 이전에는 탐방안내소에 도착해야 한다. 입장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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