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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이 지난 16일 오후 2시께 영장청구 방침을 결정한 지 62시간 만에 삼성은 오너 부재에 따른 경영 공백이란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하게 됐다. 이 부회장은 구속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밤새 대기하던 서울구치소를 19일 오전 6시 15분께 나와 곧바로 서울 서초구 서초사옥으로 향했다. 그는 서초사옥에서 최지성 미래전략실 부회장과 장충기 미전실 차장(사장) 등 그룹 수뇌부와 만나 그동안 미뤄둔 그룹 전반의 현안들과 사업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한 사유를 면밀히 검토한 뒤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구속영장 청구 직후부터 밤샘 준비 돌입
삼성은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청구를 결정한 순간부터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린 시점까지 약 62시간 동안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모든 상황을 감안한 ‘플랜 A~Z’를 마련하느라 한순간도 쉴틈없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16일 오후 특검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발표하기 전 삼성은 법리적 쟁점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자세히 정리한 장문의 입장문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전실 팀장과 임원 등이 참여한 최종 검토 회의에서 논쟁을 유발하지 않는 간결한 입장문을 내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결국 삼성측은 “특검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고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일은 결코 없다.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법원이 잘 판단해주길 바란다”는 120자 가량의 짧고 선명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대기장소 사전답사·수요사장단회의 전격 취소 등 숨가쁜 하루
삼성은 이와 별도로 영장실질심사 이후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이 부회장이 대기할 가능성이 높은 서울구치소를 사전 답사했다. 삼성은 이 곳에서 취재진이 몰릴 것에 대비한 포토라인 확보와 동선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기도 했다. 또 구속영장의 발부 여부에 따른 두 가지 버전의 입장문도 미리 준비한 것으로 파악된다.
애초 특검은 영장실질심사 전날인 17일 오후 삼성 측에 이 부회장의 구속 영장실질심사 이후 발부 여부가 결정될때까지 이 부회장이 대기할 장소를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로 하겠다고 통보했지만, 법원과의 논의를 거쳐 서울구치소로 결정됐다. 같은 날 오후 5시께에는 매주 열리는 삼성 수요 사장단회의도 전격 취소했다. 당일 오후 4시까지도 비록 사장단회의가 이 부회장의 구속 영장실질심사 당일에 열리지만 그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사장단회의는 오너가 참석하지 않는 회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단회의를 사실상 주재하는 최지성 부회장이 삼성이 처한 상황과 여러 사정 등을 고려해 사장단회의 취소를 전격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요사장단회의는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으로 2008년 삼성 특검 당시에도 계속 진행됐던데다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는 참석하지 않는 회의라 그대로 열릴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만큼 삼성의 내부 상황이 급박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다.
19일 새벽까지 초초한 기다림 끝에 “불구속 다행” 공식입장
결국 19일 새벽 4시 50분께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뇌물 범죄 요건인 대가 관계와 부정 청탁 등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관계에 비춰볼 때 다툼의 여지가 있다”라며 “지금 단계에서 이 부회장을 구속할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게 어렵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결정해 삼성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이 부회장은 간단한 소지품을 쇼핑 봉투에 담아 들고 나오면서 ‘법원 판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냐’는 등의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대답없이 서울구치소를 떠났다.
삼성은 영장 기각이 결정된지 43분 만인 오전 5시 32분 “불구속 상태에서 진실을 가릴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합니다”라는 짧은 공식입장을 밝혔다. 구속될 경우에 쓰려고 준비했던 삼성의 입장문은 영원히 봉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