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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닷컴 제공] “기암괴석이 좌우로 늘어 서 흡사 사람이 눕기도 하고 비스듬히 서 있기도 하는 것 같고 또는 호랑이가 꿇어앉은 것 같기도 하고,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이 천태만상을 이루었다.”
“바위 모양이 사람이 서있는 것 같기도 하고 누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요철이 심한 암석이 뭉쳐서 있는 것이 기이하다. 파도가 부딪치고 내 뿜는 광경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앞의 것은 조선 전기의 한명회, 뒤의 것은 조선 후기 홍경모가 쓴 <능파대기>의 일부다. 제목이 같고 내용도 비슷하지만 그 대상은 전혀 다르다. 앞의 것은 추암으로 더 잘 알려진 동해시의 능파대, 뒤의 것은 강원도 고성군의 능파대를 일컬은 것이다.
큰 곰과 우마가 뒤섞여 사방으로 달리는 듯
안내판도 없고 정확한 이름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동해시의 능파대(凌波臺)는 유명하지만 그와 한자 이름마저 똑 같은 고성군의 능파대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파도 위를 걷는다’ 또는 ‘미인의 걸음걸이’라는 뜻을 지녔다는 이 바위는 기관(奇觀)이라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모습이 기이하고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문화적으로 유서가 깊으며 자연사적으로도 가치가 큰 곳이다.
천학정을 둘러보고 내려와서 해안 쪽으로 방향을 잡아 올라가면 작은 포구가 나타난다. 옛날 괘진이라고 불렀던 문암2리다. 건물과 테트라포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바다 쪽으로 바위들이 자연 방파제처럼 길게 뻗어나간 것을 볼 수 있다. 가까이 가면 부두와 바위의 거리가 멀지 않고 병풍처럼 늘어선 바위 바로 앞에 가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한켠에는 굴삭기로 땅을 파고 있다.
가건물 뒤로 능파대에 오르면 별천지가 펼쳐진다.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놓고 경연을 벌이는 듯하다. 너럭바위 위로, 바위 사이로, 또 발밑으로도 쉼 없이 파도가 밀고 들어와 부서지며 굉음을 낸다. 조선 전기의 4대 명필이자 문장가인 양사언이 새겼다는 ‘능파대’라는 글씨가 지금도 남아 있는데, 과연 ‘파도 위를 걷는다’는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간성읍지>에는 “바위 언덕이 구불구불 이어지면서 바다 속까지 들어갔는데 마치 창끝이 늘어선 것처럼 멀리서 보면 참으로 기이하다. 층층이 몰려오는 파도가 부딪쳐서 흩어지는데, 그 꼭대기에 앉아서 내려다보면 석상의 기괴한 모습에 눈이 부시다. 마치 큰 곰과 우마가 뒤섞여 사방으로 달리는 듯하다”고 했다.
<고성군지>에 따르면 능파대의 연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강원감사로 있던 이모씨가 파도가 몰아쳐 바위를 때리는 광경을 보고 이름을 능파대라 짓고 수행원들에 친필로 쓴 글씨를 조각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이사인 김광섭씨는 글씨의 주인이 강원도 5개 군수를 지내며 많은 시문과 각자를 남긴 봉래 양사언이라고 주장한다. 홍경모가 쓴 <능파대기>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화강암 해식이 만든 특이한 풍화혈
능파대의 바위 모양은 각양각색이다. 둥글며 부드러운 것도 있고 표면이 거친 것, 구겨진 종이처럼 날카롭게 깎인 것도 있다. 편편한 바위에 좁게 팬 도랑(그루브)과 둥글게 파진 구멍(나마), 그리고 구멍들이 모여 벌집 모양을 이룬 것(타포니)이 특히 많다. 우리나라 각지를 답사해 <한국 지형 산책>이라는 책을 낸 이우평씨에 따르면 전형적인 화강암 해식 지형이다. 즉 파도와 바닷물의 소금기에 의해 만들어진 특이한 풍화혈이다.
능파대 끄트머리에는 40~5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있다. 가까운 암초에는 새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앉아 쉬고 가까이는 괘도, 멀리 가도가 보인다. 모두 바위섬이다. 능파대 해안 바위와 암초, 돌섬으로 이어지는 문암2리 바다는 스킨스쿠버 다이버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향토사가 김광섭씨는 “능파대는 역사적으로나 지역문화적으로나 보존할 가치가 매우 큰 곳”이라며 “이 일원에 대한 정비와 원형 보전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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