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조각가 권진규, 36년만의 영광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권진규 유작 회고전''
  • 등록 2009-12-22 오전 11:35:00

    수정 2009-12-22 오전 11:35:00


 
[노컷뉴스 제공] '인생은 空(공),破滅(파멸)입니다. 오후 6시 거사' 조각가 권진규(1922-1973) 선생이 남긴 유서다. 그는 52살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1973년 1월 권진규는 자신의 작품 <가사를 입은 자소상>(위 작품)과 <마두>, <비구니>등 세점이 고려대학교 박물관 수장작으로 선정되어, 기증하게 된다. 그 후 석달여만인 5월 4일 아침 고대 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자신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본 후, 그날 오후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가사를 입은 자소상>(1969-70년)은 그가 작고하기 3-4년 전에 제작한 것으로,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그는 이생을 끝내기 전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소상>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러 갔던 것일까? 국립현대미술관 류지연 학예연구사는 "<가사를 입은 자소상>에 자신의 얼굴을 중첩시켜 표현했다는 점은 그가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갈구하는 구도적인 차원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고 해석한다.

고인의 지인 박혜일(서울대 명예교수)씨는 '조각가 권진규와 만남'이라는 글에서 <자소상>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그 자소상 앞에 머무는 손님이 많았다. 주석도 많았다. - 작가의 실존이 옮겨가 체념에 가까운 이그러짐이 엿보이는 듯도 하나, 한마디로 도도하기 이를 데 없다. 마력이 발산되어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사람도 있고, 후일 작가의 자결 소식을 듣자 그 작품에서 이미 그러한 비극을 예감하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권진규선생을 잘 모르는 나는 그가 남긴 유서와 급작스런 자살을 대하고 처음에는 허무주의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족적을 살피고 나서, 깊은 비애감이 느껴졌다. 그 당시 그는 소외와 빈곤,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1972년 말 그는 '신장동맥경화증'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했으며, 어느새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심신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는 작품활동을 접기 전까지 불철주야 작품 제작에 몰두하였으나 최소한도의 생활조건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 또한 철저히 소외당했다. 대문 밖 길가에 작품 한 개를 놓아두었으나 가져가는 사람조차 없었다고 한다.

서양화가 권옥연씨는 '내 기억 속의 진규아저씨'라는 글에서 고인의 죽음에 대해 '작품에서 느껴지는 한계에 절망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 분의 자살에 대해 이런 저런 추측들이 많지만, 나는 생활의 궁핍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신병을 비관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품에서 느껴지는 한계에 절망한 때문이 아닌가한다. 미술의 유행이라든가, 이론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정통적인 스타일을 고집할 수 밖에 없었던 그분의 좌절은 어느 정도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권옥연)
 

권진규 선생이 작고한지 36년. 국립현대미술관은 '권진규'전을 열어 그의 일본 유학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작품 세계 전체를 조망한다. 이번 전시는 특히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과 무사시노미술대학 자료도서관과 함께 기획하여 얼마 전 일본에서도 전시회가 열렸다. 작가의 작고 당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고인은 1973년 고려대 박물관 수장결정이 났을 때 감격하여 매부에게 "고려대박물관에서 내 작품을 가져가기로 하였대. 그리고 돈도 준대나 봐." 하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번 '권진규'전을 공동기획한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의 마츠모토 도오루 부관장은 권선생을 세계적인 작가로 평가했다. 21일 한국을 방문한 도오루씨는 "권진규는 단순한 형체에 인간 내면의 깊이와 넓이를 함축시킨 작가이다. 그런 점에서 피카소나 모딜리아니, 마리니 등 이런 사람들이 같이 노력하려고 했던 공통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그 해답을 자기 작품에 담아낸, 피카소와 필적할 만한 세계적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진규는 해방 후 1948년(26세)에 일본에 건너가 그 이듬해 무사시노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여 시미즈 다카시교수로부터 서구근대조각의 기법을 배운다. 그는 1953년에 이과전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1959년(38세)에 귀국한다.

그의 스승 다카시는 프랑스에 유학해 브루델로부터 조각을 배운 인물이다. 1956년 권진규는 도쿄에서 열린 '부르델'전에서 부르델의 조각 32점, 회화 30점을 직접 보게 된다. 그해 다카시가 펴낸 '부르델 조각 작품집'을 구입해평생 소중히 간직한다. 권진규의 부르델 연구는 단순히 작업을 통한 조형적 문법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부르델론'을 통해 그의 인간성 탐구에까지 깊이 발을 디뎠다. 이번 전시에서도 다카시의 12점과 부르델의 부조작품 5점이 함께 소개되어 권진규 작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권진규'전은 조각작품 100점, 드로잉 40점, 석고틀 1점을 선보인다. 전시구성은 학창시절, 인물상, 자소상, 부조, 동물상,시미즈 다카시와 부르델 등 6개로 나뉘어진다. 이번 전시에 그의 졸업작품 <나부> 등 미공개작 17점이 선보인다.

조각작품의 재료는 테라코타가 주를 이루지만 석조, 목조, 브론즈 등 다양하다. 인물흉상은 같은 형태이더라도 색채와 재료를 달리 하여 표현한 것이 많다. 그의 작품 <춘몽>(대리석)과 <휴식>(테라코다)의 경우 포즈가 같지만, 재료와 크기가 다르다.

그의 작품을 대하면 한국적인 냄새가 가득하다. <애자><선자><혜정>등 수 많은 인물상에서는 한국 여인들이 풍기는 인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눈, 코, 입 등 윤곽이 매끈하거나 세밀하지 않지만, 그 얼굴의 표정이 잘 드러나 있다. <싫어>라는 작품은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도쿄신문(1968년 7월 19일자)은 '근대적 구상조각의 재미 권진규 조각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권진규는 표면적인 세밀함을 추구하지 않고, 크고 무게 있는 안정감을 표현한 조각성이 엿보인다"고 평했다.


그의 작품 중 말과 고양이 등 동물상 역시 생동감이 넘친다. <검은 고양이>는 나른한 폼으로 꼬리를 쳐들고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살아있는 듯하다.

그의 부조 작품들은 추상적이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마당극을 보는 듯한 <코메디>, 예수와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망향자>,전설속의 새를 상징하는 듯한 <전설>, 여성의 성기같기도 한 <작품> 시리즈 3점 등...

전시기간:12.22- 내년 2월 28일
전시장소:덕수궁미술관
문의:02-2188-6000,02-2022-6000
입장료: 성인 6,000원 학생 4,000원 초등학생 2,500원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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