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금융돋보기] 노조에 호봉제 없애자고 요구한 금융권

  • 등록 2015-05-23 오후 12:51:00

    수정 2015-05-23 오후 12:51:00

△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안내책자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금융권 노사는 지난 4월 올해 첫 산별교섭에 돌입했습니다. 근로자대표(이하 노조)와 사용자대표(이하 사측)가 만나 올해의 임금수준은 물론 근로조건 등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한 겁니다. 올해 산별교섭에선 신한은행, 국민은행, 기업은행, 전북은행, 신용보증기금, 은행연합회 등 6곳의 대표(행장·이사장·회장)와 노조위원장이 대표로 나섭니다. 36개 개별 금융사는 산별교섭에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매년 말 노조와 임금·단체협상을 벌일니다.

노사 교섭이 그동안 순탄하게 이뤄진 적은 거의 없습니다. 매달 두 번씩 만나 교섭을 벌이지만 4월쯤 시작한 교섭은 연말이 다 돼서야 끝이 납니다. 그만큼 양쪽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노사 간 교섭이 더 꼬일 거란 예상이 많습니다. 사측이 호봉제 폐지를 정식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리면서입니다. 지금까지 사측이 노사 교섭에서 호봉제 폐지를 요구안으로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측의 요구안을 받아 든 노조는 “검토 가치도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교섭 초반부터 분위기가 상당히 가라앉았습니다.

파격 제안한 사측

사실 호봉제를 없애자는 사측의 요구는 상당히 파격적인 겁니다. 그동안 노조의 반발 때문에 이를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됐기 때문입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노조의 반발은 처음부터 예상했었다”며 “그러나 이번에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가 더 어려워진다. 이번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노사가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필요는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금융회사 대부분은 호봉제를 따르고 있습니다. 능력에 관계없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방식입니다. 사측은 호봉제 대신 능력에 따라 직원을 연봉을 매기는 연봉제 방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정도만 연봉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지금의 임금체계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적만 있었을 뿐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기관 연구위원은 “직원 입장에선 성과를 내지 않더라도 시간만 지나면 승진도 보장되고 임금도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가 훨씬 낫다”며 “직원들의 대표인 노조로서도 직접 나서 임금체계를 바꿀 이유는 없다”고 말합니다.

사측은 내년부터 정년이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2년 늘어나는 만큼 임금체계를 손질하는 건 불가피하다고 얘기합니다. 한 시중은행 행장은 “그렇지 않아도 은행 대부분 연봉이 높은 시니어 직원이 많은데 정년이 연장되면 은행으로선 인건비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며 “앞으로 신규채용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건비 매년 오르고 책임자급 인력 많아

실제 신한·국민·우리·하나·외환·기업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 6곳의 최근 4년(2010~2014년)간 인건비(급여+퇴직금) 현황을 살펴보면 모두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신한은행은 이 기간 1조 14억원에서 1조 7349억원으로 73.2%(7335억원) 급증, 가장 큰 폭으로 늘었고 국민은행도 같은 기간 1조5920억원에서 2조 1500억원으로 35.1%(5580억원) 증가했습니다. 이들 은행은 과·차장 이상의 책임자급 비율이 각각 53%와 57%로 직급이 올라갈수록 직원수가 많은 전형적인 항아리형 인원 구성을 띄고 있습니다.



반면 직원 1인당 생산성은 크게 뒷걸음질치고 있는데요.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이 거둬들인 순이익은 6조 2000억원 수준. 이를 전체 직원수(11만 8105명)로 나눈 직원 1인당 평균 생산성은 525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0년만 해도 8400만원 수준이었지만 4년 만에 생산성이 40% 가까이 줄어든 겁니다. 특히 외환은행의 경우 이 기간 생산성이 1억4573만원에서 4988만원으로 급감, 가장 큰 하락 폭을 보였습니다. 외환은행은 책임자급 비중이 72%로 고참급 인력 편중이 가장 심합니다.

정년연장 엄연한 현실…노사 절충점 찾아야

그러나 금융권에선 이번 사측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자는 논의 역시 노사 간 입장이 워낙 달라 결국 교섭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융회사가 어렵다고 하지만 매년 큰 수익을 내고 있다”며 “앞으로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해서 근로조건을 바꾸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방법은 없을까요. 전문가들은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완전 연봉제가 아닌 부분 연봉제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직급을 단순화해 임금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합니다. 은행 역시 지금의 축소균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직원 수를 줄여 비용을 아끼는 방식으로 이익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비용이 들더라도 직원을 늘려 더 큰 이익을 창출하는 확대균형을 실현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년부터 정년이 늘어나는 건 엄연한 현실입니다. 더 분명한 건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은행은 연봉도 높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신의 직장으로 남겠지만 정작 은행 입사를 꿈꾸는 청년층에겐 빛 좋은 개살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인데요. 노사 양쪽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고민할 시점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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