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입니다. 독자 여러분 중 직장인이 계신다면 기억하실 겁니다. 지난 1월17일 토요일부터 ‘세금폭탄’ 논란이 불거졌지요. 연말정산 환급금을 계산했더니 뱉어내야 할 돈이 터무니없이 많았다는 겁니다.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여권의 대응은 ‘한 편의 코미디’였습니다. 월요일인 19일, 새누리당의 경제통(通)들이 나섭니다. “현행 세법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 밑바닥 여론은 급격하게 변합니다. “표(票) 다 떨어진다.” “당은 뭐하는 거냐.” 화요일인 20일 아침, 당은 달아오릅니다. 결국 그날 오후 당 지도부는 ‘걷은 세금을 다시 돌려주는’ 사상 초유의 방안을 검토합니다. 시큰둥했던 정부·청와대를 설득한 건 지역구 의원들이었습니다. 수요일인 21일, 그렇게 연말정산 소급적용안은 확정됩니다. 불과 3일간 일입니다.
세금의 중요성은 달리 설명이 필요없지요. 세상사 그 무엇보다 무겁고 엄중하고 신중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걷었다가 돌려주는 ‘나쁜 선례’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세금폭탄 항의가 잦아지겠지요. 증세는 꿈도 못 꿀 겁니다. 경제학에 정통한 한 의원이 당시 해줬던 말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정치는 다분히 현실을 반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법이든 원칙이든 표 앞에 언제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정치란 그런 것이지요.
표 인기 앞에 무너지는 정치인의 원칙
국회의원이 말하는 원칙이란 대개 홍보용입니다. 표 앞에만 서면 원칙은 작아집니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즉각 고개를 숙일 정도로 막강한 박근혜 대통령의 힘도 지지율에서 나옵니다. “대통령이 시장 한 번 돌면 게임은 끝난다”는 대구·경북(TK) 의원들의 이야기는 농담이 아닙니다.
버티는 정 의장의 인간적 고뇌는 가볍지 않을 겁니다. 그는 ‘대중적’ 정치인이 아닙니다. 여의도 사람들 정도만 알 법한 인사입니다.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빠져있습니다. 박 대통령과 정치적 체급 자체가 다르지요. 중학생이 정의감 하나로 대학생과 ‘맞짱’을 뜨는 모습은 과한 가정일까요.
비주류인 정 의장은 당내 기반도 미미합니다. ‘정의화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가장 어려울 때 비호해줄 친구가 없다면 참 외롭고 막막하지요. 게다가 그는 불과 몇 달 후면 의장직을 내려놔야 합니다. 처음 자신을 뽑아줬던 당 의원들이 막판 자신에게 돌을 던진다면, 그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정치적 미래’를 고려하면 화끈하게 직권상정을 하고 여권 지지층의 환호를 받는 그림도 아예 배제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여권의 기라성 같은 인사들이 박 대통령에 맞서지 못했던 건 이런 이유들이 자리했습니다. 정치권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찍은 인사 중에서 이렇게 버티는 건 정말 이례적”이라고 말합니다.
“법 지키자”는 기본은 한 번 꼽씹어야
정 의장이 말하는 원칙을 ‘정답’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정치의 영역에서 정답은 없지요. 다만 정 의장이 가장 ‘주목받는’ ‘재미있는’ 정치인이 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의 행보가 전통적인 여의도 문법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친박계 의원은 정 의장을 두고 “국가는 염두에 두지 않고 너무 자신만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경제 위기는 아랑곳않고 강자에 맞서는 ‘멋있는’ 모습만 보여 정치적 미래를 도모하려 한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도 일리가 없진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정치적 쟁점들은 다 논쟁의 영역으로 몰아넣더라도, 법을 최후의 보루 삼아 반드시 지키겠다는 정 의장의 발언은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 법을 지키자는 게 이처럼 신선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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