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그동안 자체 개발해 사용하던 문서작성 프로그램인 ‘정음 글로벌’을 23년만에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일부 업무에서만 정음 글로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를 병행해 사용했지만 내년부터는 MS 워드로 전면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2년 PC용 프로그램인 훈민정음(현 정음 글로벌)을 개발해 사용해왔으며 이에 따라 협력사들도 정음 글로벌로 문서를 작성해왔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삼성그룹에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글로벌 협력사 등의 대외 업무에서 호환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세계 90% 이상의 문서 프로그램이 MS 워드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측도 “MS 워드 사용으로 엑셀, 파워포인트 등 사무용 소프트웨어와도 호환이 원활해질 것”이라면서 “윈도, 안드로이드, 리눅스 등 대부분의 운영체제(OS)를 지원해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개인용 컴퓨터(PC), 스마트폰, 태블릿 등 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어디서나 업무를 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 삼성전자의 정음 글로벌 홈페이지(www.jungum.com)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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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문서 프로그램 교체는 이같은 호환성 확보 문제 뿐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사티나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난뒤 곧바로 나온 정책이기 때문이다. 지난 달 23일 한국을 방문한 나델라 CEO는 방한 첫 일정으로 이재용 부회장과 2시간 가량 만났다. 두 사람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특허사용료(로열티) 관련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MS는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OS 관련 특허 사용권 계약을 위반했다며 지난 8월 미국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소장에서 MS는 노키아 휴대전화 사업부문 인수 이후 삼성전자는 MS와 맺은 로열티 계약이 무효화 된 것으로 판단해 지난해 가을부터 로열티 지급을 중단하고 지연된 이자지급도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또한 MS가 노키아를 인수했기 때문에 계약내용이 달라져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잇따른 특허소송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다. 애플과 MS 뿐 아니라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사인 엔비디아까지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제품은 만들지 않으면서 특허만을 보유하고 있는 ‘특허괴물’들도 삼성전자를 겨냥하고 있다. 갈길 바쁜 삼성전자로서는 특허소송 하나 하나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애플의 협력을 이끌어내며 애플과 전 세계에서 벌이고 있던 특허소송을 미국 이외 지역에서 모두 철회하기로 합의한바 있다.
따라서 이번 삼성전자의 MS 워드 사용 발표는 이같은 현재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MS가 문서 프로그램 변경을 특허소송 취하와 맞바꿨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지리한 특허소송을 조기에 매듭지을 수 있다. MS 또한 삼성전자라는 세계 최대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에 10만여명이 넘는 직원들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2015년부터 삼성그룹 모든 계열사들가 순차적으로 MS 워드로 문서 프로그램을 전환할 계획이어서 MS의 실익은 극대화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이번 문서 프로그램 전환 발표는 양사의 최고 수뇌부가 만나 현안을 논의한 뒤 나온 첫 사례다. 향후 양사의 특허소송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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