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서구식 공원 '자유공원'
인천을 대표하는 자유공원은 1888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인천항 개항 이후 인천으로 모여든 서양 사람들이 살던 만국지계(萬國地界) 안에 만든 것이라 '만국공원'이라 불리다 1957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당시 인천세관에 토목기사로 근무하던 러시아인 사바틴(Sabatin)이 이곳에 택지설계를 하며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원 가운데는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서 있는데 원래 이 자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독일 무역회사 '세창양행'의 사택(직원용 건물)이 있었다. 1884년 지은 이 건물은 6·25전쟁 때 함포사격으로 사라졌다. 그 옆길로 조금 내려가면 당시 서양인들의 사교 장소였던 '제물포구락부'가 복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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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발상지 '공화춘'
자유공원 아래 중국인 마을에 가면 '국민 음식' 자장면의 발상지로 알려진 옛 중국 음식점 '공화춘(共和春)' 건물이 남아 있다. 1905년 이곳에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청요리(중국요리) 전문점 '산동회관'의 주인인 화교 우희광(于希光)씨가 춘장에 국수를 섞어 먹는 중국식 자장면을 처음 선보인 것이라 전해 온다. 우씨는 그 뒤 1912년 중화민국 공화국 출범을 기념해 가게 이름을 '공화춘'이라 바꿨으며, 6·25전쟁 직후 이곳에서 지금처럼 양파와 고기, 전분 등을 넣고 볶는 한국식 자장면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는 전쟁 직후 어려운 형편에서 빨리 만들어 값싸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데, 이것이 오늘날 자장면의 출발이 됐다. 이 공화춘은 1984년에 문을 닫았으나 인천시 계획에 따라 현재 자장면 박물관으로 다시 꾸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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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移民) 역사 보여주는 이민사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항에서 미국 상선 '게릭호'를 타고 하와이로 떠난 102명이었다. 그 뒤 미국과 멕시코 등지로 이민이 계속됐고, 그곳에서 결혼할 남자의 사진만 보고 이민을 간 '사진신부'도 생겼다. 초기에 하와이로 이민 간 우리 동포들은 장시간 노동에 싼 임금, 극심한 인종 차별에 시달리며 비참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교를 세워 자녀들을 가르치고,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기도 하면서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인하대학교도 이들이 보내온 성금을 바탕으로 만든 학교여서 학교 이름이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를 합쳐 인하대가 됐다. 이 같은 내용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이민사박물관이 월미도 해사고등학교 주변에 2008년 문을 열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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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팔미도 등대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5.7㎞ 떨어진 팔미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서 있다. 1903년 6월 1일 처음 불을 밝힌 이 등대는 높이 7.9m, 지름 2m로, 2003년 그 옆에 새로 만든 등대에 임무를 넘겨주고 100년 만에 퇴역했으며,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지난해부터 팔미도가 일반에 개방돼 인천 연안부두에서 유람선(어른 왕복 요금 2만2000원)을 타면 편안하게 갈 수 있다.
인천은 이 밖에도 1897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의 공사가 시작된 곳이어서 그 장소인 쇠뿔고개 주변에 '기공식 표지석'이 서 있다.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 최초의 천일염전도 인천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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