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공약을 검토한 한은 고위인사들은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다. 불편한 속내도 이따금씩 표출했다. “기업 구조조정에만 돈을 대주면 다른 분야는 가만히 있겠습니까.” “지금이 그 정도로 위기인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 구조조정이 타이밍을 놓치고 스텝이 꼬인 결정적인 계기다. 양적완화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구조조정 자금 마련을 둘러싼 정부와 한은간 줄다리기에만 한 달을 넘게 허비한 것이다.
논란이 다시 불붙은 건 지난 4월 28일 오전.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이 펼친 무차별적인 돈 풀기식 양적완화가 아닌 꼭 필요한 부분에 지원이 이뤄지는 선별적 양적완화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는 대통령까지 나서 한은을 압박하는 모양새로 해석됐다. 여권이나 정책당국도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보다 한은의 직접 출자 등을 선호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 4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친 기획재정부 한은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 협의 결과, 국책은행 자본 확충은 직접 출자와 자본확충펀드를 통한 간접 출자 방식을 병행하는 방안으로 일단 가닥을 잡은 상태다. 협의체는 다음달 안으로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문제는 여기에도 이견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한은이 직접 출자까지 맡아주길 바라지만, 정작 한은은 난색을 보이며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자본확충펀드 역시 대출금 조기 회수를 위한 정부의 지급보증이 필요하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새로운 변수도 등장했다. 여야 정치권이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한 방법론으로 재정 투입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연내 추경 편성을 통한 정부의 현금 출자가 거론된다. 국회가 정부의 추경안을 승인하면 이를 재원으로 삼아 정부가 국책은행에 자본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양적완화 논란에서 시작해 한 달을 넘게 끈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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