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6월 21일자 35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연매출 200조원, 삼현그룹 총수 이정구는 어느덧 일흔 살이 넘었다. 큰 형을 제치고 아버지가 일으킨 가업을 물려받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일궈냈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쇄신과 열정, 치열함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반도체·휴대전화 등의 첨단 분야에서 남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뤄냈다.
그래서 이정구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반(反)삼현그룹 운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비자금 축적과 편법 증여, 경영권 3대 세습 등을 이유로 삼현그룹을 깎아내리기만 한다. 사회에 기여한 공로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임원들을 추궁하지만 그들은 직언을 하지 않는다.
일단 흥미롭다. 몇 장만 넘기면 이정구 회장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한눈에 보인다. 특정 기업이 연상되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저자는 총리실 국무조정실장과 한국거래소 초대 이사장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명시하진 않았지만 누구나 추론하고 유추할 수 있는 기업 내부 사정을 그럴듯하게 그려낸다.
소설이지만 단순히 허구라고 하기엔 현실과의 개연성이 크다. 말미의 이정구의 선택도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불법·편법을 통해 부를 쌓았어도 결국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국민적인 존경을 받은 카네기와 록펠러 같은 기업가들이 엄연히 있어서다.
재벌비판론자인 백창우와 반삼현그룹 운동을 주도한 주채현도 결국 이정구의 대승적인 결단에 반해 그를 지지하고 인간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이정구의 변화에 저자의 바람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