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동물을 찾아서]“살았나 죽었나”…일제때 사라진 ‘아무르 표범’

한반도 누비던 한국 토종 표범 ‘아무르 표범’ 멸절 추정
나무타고 헤엄까지, 적응력 높아 동화서 현명한 동물 등장
일본강점기 ‘해수구제’ 사업 19년간 646마리 포획
박제·가죽 대부분 일본으로 반출돼 국내엔 표본도 없어
  • 등록 2015-07-11 오전 6:30:00

    수정 2015-07-11 오후 7:25:33

서울대공원에 사는 아무르 표범은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한국토종 ‘아무르 표범’의 아종이다. (서울대공원 제공)
이데일리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했거나 이미 멸종된 동식물을 소개하는 기사를 국립생물자원관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 인간의 남획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변화는 수십년 전만 해도 쉽게 접할 수 있던 동식물들마저 멸종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멸종위기 동식물들에 대해 더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합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디즈니 애니메이션 ‘정글북’에는 소년 모글리와 우정을 나누는 흑표범 바기라가 나옵니다. 바기라는 모글리의 동물 친구들 중 가장 용맹하면서 지혜롭고 현실적인 동물로 묘사됩니다. 어릴 때 저는 바기라 같은 동물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표범이 진짜 용맹하고 지혜로운 동물일까요?

표범은 고양이과 육식 동물입니다. 털의 색깔은 황색 또는 황적색이지만 몸체와 다리·꼬리에 검은 점과 같은 매화무늬가 있어 호랑이, 스라소니 등과 같은 다른 고양이과 동물들과 확실히 구분됩니다.

동작이 날렵해 사슴과 같은 동물을 추적해 사냥할 정도로 빠릅니다. 몸무게는 50~80㎏ 가량 된다고 합니다. 몸무게가 120~150㎏ 정도인 호랑이보다 날렵해 호랑이가 오르지 못하는 나무를 척척 오릅니다. 호랑이에 쫓긴 표범이 9m 높이까지 뛰어오른 모습이 러시아서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대체로 고양이과 동물처럼 물을 싫어하지만 필요한 때에는 넓은 강도 헤엄쳐 건넙니다. 호랑이 등 다른 고양이과 동물과 달리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아마도 이런 모습 때문에 이야기속에서 현실적이고 영리한 동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주 서식지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부터 극동러시아와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에 넓게 분포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서식지 파괴와 단편화로 인해 많은 지역에서 자취를 감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위급종(Critically Endangered, CR)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98년부터 표범을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으로 특별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후여서 표범이 우리나
표범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서울대공원 제공)
라 토종동물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조선 태조부터 선조까지 208년 간 총 788장의 표범 가죽이 왕실에서 진상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명나라에 매년 36장의 표범 가죽을 정기적으로 보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것으로 비춰볼 때 한국 토종 표범인 아무르표범은 우리나라 전역을 누비며 살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무르표범의 모습은 조선시대 민화에서도 확인됩니다.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등장하는 그림은 부귀와 행복 등을 염원하는 ‘길상도’(吉祥圖)로 민간에서 많이 그려졌는데요, 이때 등은 줄무늬인 호랑이를 표현했고 가슴은 표범의 매화무늬를 그려넣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호랑이와 표범을 구분하지 않고 그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예 호랑이의 줄무늬가 없이 매화무늬의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매화무늬가 아닌 엽전 무늬라고 해 표범을 ‘돈범’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표범이 사라진 가장 큰 원인은 아름다운 가죽 때문입니다. 권력가들은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으로 자신의 권위를 드러냈는데요, 일제강점기때 특히 심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제는 ‘황국 신민의 안전에 해가 되는 동물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한반도의 대형동물에 ‘해수’라는 이름을 붙여 마구잡이로 남획하는 ‘해수구제’ 사업을 벌였습니다.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약 19년 동안 646마리의 표범이 사살됐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36년간 지속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포획된 표범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잡은 표범의 가죽은 대부분 일본으로 반출돼 일본 귀족들의 ‘전리품’이 됐습니다. .
표범이 꽃밭을 거닐고 있다.(서울대공원 제공)
해방 이후 일부 남아 있던 아무르 표범들은 산촌 주민이 멧돼지나 노루 등을 잡기 위해 놓아둔 올무나 덫에 희생됐습니다. 전문가들은 1970년 이후 아무르 표범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남한에서는 절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표범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됐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표범 표본조차 없다고 합니다.

허위행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은 말합니다. “우리나라에 살았던 표범의 동일 아종이 러시아에 일부 남아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 정부와 국제적인 민간동물보호단체(ALTA)들이 표범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이 같은 노력에 동참해 표범이 우리나라에서 다시 터전을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둬야 합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한국토종 표범을 다시 는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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