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리인 문제는 경영학만의 주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사회 거의 모든 조직에 해당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정치권인 것 같습니다. 주인(국민)의 요구는 안중에도 없는 대리인(국회의원)이 수두룩하지요. 보통 비(非)전문가인 주인은 전문가인 대리인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속속 알 길이 없습니다. 4년 내 치적 쌓기에만 급급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나랏돈을 함부로 쓰는 정치인은 너무 많습니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청탁에 열을 올리는 사례도 적지 않지요. 대리인 문제는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와 쌍둥이입니다.
누리과정 논란, 대리인 문제의 결정판
최근 불거지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 보육·교육) 논란은 가히 대리인 문제의 결정판입니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여야 의원과 시·도 교육감을 직접 뽑고, 정부부처 공무원에 간접적으로 나랏일을 맡깁니다.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할 공복(公僕)입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정작 해야 할 일은 않는 게 누리과정의 현실입니다. 여야와 정부는 애초 선거(2012년 총·대선)만 보고 누가 봐도 어설픈 정책을 만들었고, 시도 교육청과 시도 의회는 엄연히 법령이 있음에도 “돈 없다” “배째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누리과정을 취재하면 많이 듣는 얘기가 있습니다. “중앙이니 지방이니 하면서 싸우는데 왜 저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국민이 보기에 중앙이든 지방이든 그냥 한 정부라는 겁니다. 월급 받고 내는 소득세나, 밥 사먹고 내는 부가가치세나, 내 집 장만하고 내는 취득세나, 한 해 두 번 내는 자동차세나, 어디로 흘러들어가 누가 쓰는지 관심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겁니다. 꼬박꼬박 낸 세금에 맞게 서비스를 해달라는 요구일 뿐입니다. 나랏일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에게 이건 어떻게든 해야 하는 의무이지요.
복지정책이 ‘계파전쟁’보다 중요하다
저출산의 공포는 정부당국도 알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일하는 인구도 줄고 돈 쓰는 인구도 줄지요. 우리경제가 밑둥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정부당국이 저출산 대책을 잇따라 발표하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대리인 문제의 해결책을 경영학 교과서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대리인을 위해 일하는 게 주인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하라.” 기업은 ‘스톡옵션’이란 제도가 있지요.
누리과정 논란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야와 정부부처, 시도 교육청이 ‘진실하게’ 해결책을 논하게 할 장치가 현실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무서운 건 투표권이 있어서입니다. 마침 몇 달 후 총선입니다. 대선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이번 논란의 경과를 보면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저출산 고령화 시대, 복지정책은 알량한 ‘계파전쟁’ ‘진영싸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 혹은 정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 관련기사 ◀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정의화式 마이웨이가 주목받는 이유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왜 그렇게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십니까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협상학 관점으로 본 예산정국 이야기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YS의 'IMF 환란' 책임 논란에 대하여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호외편]대계마을과 하의도의 그 검푸른 바다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서울시 청년수당發 복지논쟁이 건강한 이유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늙어가는 도시' 대구는 분노하고 있다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국회의원이 지역예산에 목 매는 몇가지 이유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누리과정 힘겨루기에 워킹맘은 웁니다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어떻게 하면 둘째를 낳겠느냐고요?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갑작스런 이념전쟁, 왜 지금인가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전환기 한국경제, 朴정부 시간이 없다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국가'는 없고 '지역'만 판치는 국회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힘없는 비례대표는 말이 없다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토요일, 투표하러 갈 의향 있으십니까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경제가 성장하면 고용 질도 좋아질까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김무성式 노동개혁에 대한 단상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국가부도는 정말 '딴 나라' 얘기일까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노동개혁도 '미봉책' 그치려나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비례대표를 꾸짖는 정치인들의 속내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정부실패보다 더 심각한 정치실패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공무원 철밥통도 불안한 시대
☞ [여의도 정책 다시보기]잊을 만하면 또, 그 이름 법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