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증세 아니다'로 읽어달라고?

  • 등록 2015-02-05 오전 6:07:00

    수정 2015-02-05 오전 6:07:00

르네 마그리트作 ‘이미지의 반역’
[이데일리 오성철 부국장 겸 중권부장]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흥미로운 작품중 하나는 ‘이미지의 반역(La trahison des images)’이다. 화가는 누가봐도 파이프로 보이는 사물을 그려놓고는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표기해 놓아 보는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몇몇 해설서를 보면 이 그림은 파이프를 상징하는 일종의 기호일 뿐이지 파이프 자체는 아니다라는 화가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조금 난해한 듯해도 언어와 그 이미지의 연관성을 떠올리면 흥미로운 메시지임에 분명하다.

직장인의 연말정산을 계기로 증세논란이 뜨겁다. 이 역시 ‘증세 아니다’라는 언어와 그 의미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차이가 있다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호기심을 이끌어냈다면 ‘증세 아니다’라는 정부의 억지가 짜증과 공분을 유발했다는 점일 것이다.

세금의 정의는 ‘국가나 지방공공단체가 국민이나 주민으로부터 강제로 거둬들이는 돈’이다. 납세자로서 나라에 내야하는 돈이다. 따라서 과거와 똑같은 조건에서 연말정산을 통해 국가에 지불해야 할 금액이 커진다면 당연히 증세(增稅)로 봐야 한다.

사실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불리는 이 사태는 지난 세제 개편때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근로소득공제 비율이 낮아지고 각종 비과세 감면혜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꾼 것은 ‘깎아주는’ 폭과 대상을 종전보다 줄여 열악해지는 재정부담을 덜어 보자는 취지였다.

국민들이 열받은 것은 늘어난 세금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증세 아니다’라는 정부의 궤변때문이었다. 세금에 관한 대통령의 준엄한 지침을 한 글자라도 고쳐서는 안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해괴한 논리가 돼버렸다. 그리고 여당 지도부에서 조차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발언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실세계에서 언어의 상징과 그 전달 의미가 충돌해서는 곤란하다. 그게 정치나 정책의 세계에서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그 혼란의 정점에 와 있는 듯하다. 오죽하면 교수사회가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는 것.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강압적으로 인정하게 한다는 뜻)’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을까.

견고하게 보였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까지 급락한 것도 ‘국민 행복’이라는 대선공약을 달성하지 못한 정책의 무능함보다는 신뢰성에 금이 갔던 게 더 컸을 것이다. 국민은 ‘그게 아니다’라고 아우성인데 이를 귀담아 듣는 것처럼 느껴지질 않으니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에 취임한 윈스턴 처칠은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는 달리 드릴 것이 없다”는 명연설을 남겼다. 가장 심각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며 의회와 국민을 향해 고통분담을 요구했고 결국 그가 목표한 대로 영국은 2차 대전 승전국이 됐다.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 그리고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만 커져가는 게 자명해 보이는 상황에서 명분에 사로잡혀 ‘달콤한 약속’을 계속 되뇌일 순 없다. 이치(理致)에 닿지 않은 교조주의를 버리고 솔직한 진단과 실현가능한 처방이 필요한 때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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