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해외 취업, 도피가 아닌 도전입니다"

박영범 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인터뷰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 가치를 두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
5월 중 해외 취업정보 포털 구축해 정보 한 곳서 확인
직원들에 “NCS 잘못되면 공단, 직능원 같이 죽는다” 엄포
  • 등록 2015-03-24 오전 7:00:00

    수정 2015-03-24 오전 7:00:00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박영범(58·사진)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비서실 직원들을 자주 긴장하게 한다. 외부 인사와의 약속 장소에 수행원 한 명 없이 혼자 찾아가기 일쑤다. 식사 약속이 잡히면 본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 식당을 예약하기도 한다. 외부 행사 참석 시 수행 업무를 맡는 비서실 직원이 있지만 사무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빨리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박 이사장은 혼자였다. 가까운 곳에서 점심 약속이 있어서 식사가 끝나자 바로 택시를 타고 건너왔다고 했다.

“직원들 마다 맡은 일들이 있는 데 불필요하게 수행원을 대동하고 다닐 필요가 있나요?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혼자 많이 돌아다닙니다.”

산업인력공단 정체성 재정립 나서

박영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13일 서울 중구 회현동 이데일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방인권 기자)
박 이사장은 17일 열린 창립 33주년 기념식에서 공단의 새 비전으로 ‘사람과 일터의 가치를 높여주는 인적자원 개발·평가·활용 지원 중심기관’을 선포했다. 이 구호에는 박 이사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단 출발은 직업훈련, 직업훈련교사양성, 검정 3가지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직업훈련교사양성은 한국기술교육대학에, 직업훈련은 한국폴리텍대학에 떼 줘 검정업무만 하게 됐지요. 공단이 설립될 때는 직업훈련과 검정을 연계해 시너지효과를 만들려고 했는데 다 떼주면서 기본 전제가 허물어져 버린 겁니다.”

2012년부터는 근로자의 직무역량을 개발하기 위한 훈련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이 공단의 새 업무로 편입됐다. 연간 예산도 5000억원에서 1조 20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며 기관의 외연도 확대됐다. 하지만 이미 공단은 직업훈련 기관이 아닌 지원 기관으로 바뀌었고 직원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오기 전엔 인적자원개발 중심기관이라고 표현했어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인적자원개발 업무 직원은 33%에 불과하더라고요. 절반 이상이 외국인 근로자 체류지원 관리, 해외 청년지원사업, 국제기능올림픽 지원 등인데도 인적자원개발에 중점을 두다 보니 그 외의 업무를 하는 직원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요.”

시대가 변하고 정부가 바뀌면서 공단의 기본 철학과 방향성을 조금씩 상실해온 탓이다. 이 때문에 그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비전 제시를 통해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박 이사장은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 가치를 두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취업..도피 아닌 도전”

공단이 주력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 청년 취업 지원사업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케이무브(K-Move) 사업’의 내실화는 박 이사장이 꼽는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이 사업은 당초 청년의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식당이나 청소 판매 등과 같은 단순노무 일자리가 포함되면서 허드렛일 취업조차 해외취업으로 포장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대행 업체에 맡기다 보니 한계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 중입니다.”

특히 공단은 해외 취업 관련 정보 포털을 구축해 그동안 부처별, 사업별로 나눠어있던 해외 취업 관련 정보를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포털 구축은 5월경 완료된다. 현재 해외취업은 고용부와 공단이, 해외인턴은 교육부가, 해외봉사는 외교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각각 맡고 있다.

“외국계 기업이 국내인력을 필요로 할 때 소개하고 알선하는 업무까지 공단이 맡게 됐습니다. 해외 일자리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해외 취업 알선 시 단순노무직을 배제하고 연봉기준도 단기는 1500만원, 장기는 2400만원이상을 하한선으로 설정해 해외 취업의 질을 강화하겠습니다.”

그동안 해외 취업은 주로 호주, 뉴질랜드나 미국 지역에 편중됐다. 공단은 올해부터 유럽 지역으로 해외 취업 알선을 확대할 계획이다.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이 유럽권에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독일 정부와 논의 중인데요. 한국 청년의 IT 실력은 여기서도 높게 평가하고 있어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비영어권 지역 진출 때는 언어장벽에 부딪칠 수 있어 각국에 맞는 어학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이 부분도 지원할 예정입니다.”

박 이사장은 해외 취업은 도피가 아닌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취업도 안 되는데 해외나 나가볼까’이런 생각으로는 절대 취업에 성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만약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에서 요리사가 되고 싶다면 그 나라 언어와 요리를 배워야겠지요. 자기가 뭘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는 역량을 개발해야 합니다.”

“NCS 잘못되면 공단, 직능원 같이 죽는다”

박영범 이사장은 “자신이 뭘 원하는 지를 정확히 알고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방인권 기자)
박영범 이사장의 전공은 인적자원개발이다. 그는 직업능력개발원장으로 재직하면서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학습모듈 교제를 개발했고 공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NCS 학습모듈을 현장에 적용하는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NCS 개발 과정의 산증인이다.

“우리나라 직업교육훈련 시스템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이원화됐어요. 직업교육은 교육부가 직업훈련은 고용노동부가 맡고 있어 NCS를 개발할 때도 부처 간 신경전이 팽팽했어요. 그때 국무조정실에서 NCS 개발은 고용부가, 교육 프로그램은 교육부가 맡는 것으로 조정하면서 직능원과 공단이 각각 업무를 수행해 왔지요. 하지만 협업이 잘되지 않아 서로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는 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직원들에게 엄포를 놨다고 했다.

“‘누가 무슨 일을 하는 지 국민은 관심 없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공단과 직능원은 같이 죽는다’라고 했더니 일이 빨라지더군요.”

이렇게 만들어진 NCS 모듈은 지난 1월 공단 신입직원 선발에 처음 적용됐다. 공단은 NCS기초직업능력평가를 통해 응시생 6951명 중 179명을 1차 선발했고 다시 직무수행능력평가 면접을 통해 120명을 최종 뽑았다. 이 과정에서 179명을 대상으로 한 NCS 기반 채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9%가 NCS 기반 채용문화 확산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NCS를 적용한 결과 해외 경험이 없는 사람도, 토익 점수가 700점 이하인 사람도 합격했어요. 지금까지는 돈을 들여 스펙을 쌓아야 했지만, 이제는 돈을 들일 필요가 없는 거죠. 별다른 취업 준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대신 진짜 적합한 인재인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취업하려는 청년도 이들을 선발하는 산업현장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이 외에도 공단은 일학습병행제, 스펙초월멘토스쿨 등의 정부 국정과제와 숙련기술장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공단은 ‘평생직업능력개발 행복 서포터’입니다. 전 생애에 걸쳐 직업능력을 키우고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공단의 설립 목표입니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처럼 국민이 일과 배움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영범 이사장은 서울고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연구원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을 거쳐 지난 1997년 한성대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2011년에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을 맡아 일학습병행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등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는 고용노동정책평가위원회 위원장과 청년취업특별위원회 위원, 국가기술자격정책심의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8월 산업인력공단의 13번째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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