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 년 간 맥주시장을 되돌아 보면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애주가이신 아버지 술상엔 항상 OB맥주가 올라왔습니다. OB맥주는 당시 한국사람이면 10명 중 7명이 마실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하이트맥주의 그늘에서 동양맥주는 94년 OB아이스(OB ICE)를 선보였지만 아버지는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진로는 카스(Cass)를 출시했고 동양맥주는 카스의 대항마로 넥스(Nex)를 출시했지만 이 역시도 까다로운 아버지의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막 대학생이 된 저도 가끔 동아리 행사장에서 협찬받은 넥스를 공짜로만 마실 정도였습니다.
이후에도 동양맥주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무리하게 신제품들을 내놓았지만 그때마다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95년 사명을 오비맥주로 바꾼 동양맥주는 `OB라거(OB Lager)`를 선보이며 하이트의 `깨끗한 물`에 대항해 `숙성`이란 메시지를 전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이미 꺾인 점유율을 뒤집기는 어려웠고 결국 98년 벨기에 맥주회사 인베브에 인수됐습니다. 당시 법정관리에 들어간 진로는 카스 사업부문을 매각했고 오비맥주는 이를 인수, OB와 카스란 브랜드를 갖게 됩니다.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막내 생활을 하게 된 저도 회식자리에서 "맥주는 카스로 주세요"란 말이 입에 붙었습니다. 카스의 브랜드 선호도가 50% 가까이에 이른 것도 회식자리에서 술을 주문할 권리(?)를 가진 젊은 소비자층에 대한 마케팅의 승리일 것입니다. ▶ 관련기사 ◀ ☞[기로에 선 1등기업]②1등 하이트의 추락..왜? ☞[기로에 선 1등기업]③오비 vs 하이트, 마케팅 전략을 듣다 ☞[기로에 선 1등기업]④2등의 반란..역습당한 1등 수난시대 ☞[기로에 선 1등기업]⑤"승리의 기쁨에 취한 순간 추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