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통제 피하자".. 초고가 주택에 '후분양' 바람

초기 임대보증금 책정 제재 없고
분양시 사업자 재량껏 가격 책정
임대 계약률만 높으면 남는 장사
입주자 살아보고 분양 여부 결정
  • 등록 2018-06-27 오전 6:00:00

    수정 2018-06-27 오전 6:00:00

[그래픽=이데일리 이서윤]
[이데일리 박민 기자] 서울의 고가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임대 후 분양 전환’ 방식의 민간임대주택이 대세로 급부상하고 있다. 선(先)분양에 따른 분양가 통제를 받느니 차라리 후(後)분양을 택해 정부 규제를 피하겠다는 전략이다. 다음달 용산구 한남동에서 공급하는 ‘나인원 한남’에 이어 용산구 이태원동 옛 유엔사 부지에서 추진 중인 주택사업도 이 같은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역시 최근 분양가 통제에 따른 주변 시세 대비 분양가가 저렴한 ‘로또 단지’ 양산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임대 후 분양 전환 주택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원갑 위원은 “정부의 분양가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임대주택은 건설사 입장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고육지책일 것”이라며 “다만 임대보증금만 수십억원에 달해 한편으론 정부가 또다른 ‘귀족 임대아파트’를 양산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분양가 압박에 우회 전략…4년간 임대 후 분양

나인원 한남 시행사인 대신F&I는 내달 2일 한남동 옛 외인아파트 부지에서 공급하는 ‘4년 임대 후 분양 전환’ 아파트 총 341가구(전용면적 206~273㎡) 임차인을 모집한다. 이 같은 방식의 주택 공급은 일대에서 최고급 아파트 단지로 자리잡은 ‘한남더힐’에 이어 두번째다. 현행 민간임대주택법에는 임대 의무기간 이후 분양 전환 시 분양가 산정에 대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없다. 이에 주택사업자가 재량껏 분양가격을 책정할 수 있어 정부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는 효과가 있다.

당초 나인원 한남은 작년까지만 해도 착공과 함께 입주자를 모집하는 선분양을 추진했다. 분양가를 3.3㎡당 6360만원(펜트하우스 제외시 5700만원)으로 정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승인 문을 두드렸지만 거절 통보를 받았다. 주변 아파트보다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올 들어 설계 변경을 통해 분양가를 3.3㎡당 5000만원 초반까지 낮췄지만 또다시 문전박대당하면서 결국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임대 후 분양 전환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임대 후 분양 전환 방식이 의외로 수익성 ‘홈런’을 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후분양은 사업기간 동안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금융 비용 지출 탓에 선분양보다 부담스러운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임대계약률이 높게 나온다면 사업비를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고, 분양가도 나중에 재량껏 책정할 수 있어 사업자 입장에서는 더 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초기 임대보증금은 책정 과정에서 별도의 제재를 받지 않는 만큼 계약률만 높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현재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임대기간 8년 이상)을 제외한 민간임대주택은 사업자가 임대료를 알아서 정하게끔 되어 있어서다. 이에 나인원 한남은 임대 보증금을 전용면적(206∼273㎡)별로 33억~48억원에 책정했다. 3.3㎡당 4500만원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HUG에서 분양가를 통제하면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인근 최고 분양가가 3.3㎡당 4750만원(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이었는데, 이는 전월세 보증금 수준”이라며 “한편으론 정부의 규제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방증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분양가 통제 계속될 수록 임대 후 분양 전환 사례 늘 듯”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로 주택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입주민 입장에서도 임대 후 분양 전환 방식은 선계약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월세로 살아보고 향후 집값 변동률 추이를 지켜보다가 분양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서다. 여기에 임대 의무기간 4년 동안 취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의 세금 부담없이 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분양 전환시 분양가는 임대사업자(시행사)가 결정하다보니 이를 둘러싼 임대사업자와 임차인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앞서 한남더힐의 경우 임대기간 중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분양가 산정을 놓고 입주민과 시행사간 첨예한 입장 차로 법적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나인원 한남은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분양가를 사전에 공개할 방침이다. 대신F&I 관계자는 “분양가격은 내년 11월 입주 시점 때의 주택 감정평가액을 기준해 산정할 예정”이라며 “이달 임차계약을 진행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공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분양 전환 가격은 당초 선분양을 위해 책정했던 분양가인 3.3㎡당 평균 6360만원 이하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분양을 목표로 인근 이태원동 유엔사 부지에서 추진중인 주택사업도 ‘임대 후 분양’ 방식을 택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시행사 일레븐건설은 아파트 600여가구와 오피스텔 1000~1300실 등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르면 9월 건축심의를 신청할 계획이다. 일레븐건설 관계자는 “내년 중순 분양을 목표로 연내 건축심의를 완료할 예정”이라며 “임대 후 분양을 비롯해 후분양제, 선분양제 등 다각도로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일률적인 분양가 통제가 계속될 수록 고가주택을 중심으로 ‘임대 후 분양 전환’ 방식의 아파트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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