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이 여름나기…열대야에 한강변 전전하며 유랑

"에어컨은 사치품" 어머니 반대로 에어컨 없이 생활
이달 초부터 차안에서 자…온몸 쑤시고 못 일어날까 걱정
견디다 못해 에어컨 사러 가니 “20일 기다려야 설치 가능"
  • 등록 2016-08-14 오전 9:38:12

    수정 2016-08-14 오전 9:38:12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는 게 이렇게 힘든 줄 처음 알았다. 사진은 지난 13일 열대야에 지친 시민들이 반포 한강공원을 찾아 더위를 식히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눈을 떠보니 아직 새벽 1시 30분이다. 베갯잇이 땀으로 흥건하다. 선풍기가 열심히 돌고 있긴 하지만 뜨거운 바람만 뿜어낸다. 오늘밤도 열대야에 제대로 잠을 자긴 글렀다. 찬물을 들이키고 자동차 열쇠를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차안에서 자야할 모양이다.

에어컨 없이 여름나기…“20일 기다려야 설치 가능”

‘찜통 같은 더위’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여름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긴 해도 올해처럼 에어컨이 간절하긴 처음이다. 열대야 때문에 제대로 잠을 못 이룬지도 벌써 3주째다.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서울에 열대야가 발생하지 않은 날은 단 이틀(7월29일·8월3일)뿐이다. 기상청은 서울에서 최소한 17일까지 열대야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에어컨은 사치품’이라는 고정관념이 확고한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에어컨은 결혼할 때나 사라”고 한다. 난 여자친구도 없는데…. 열대야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를 몰래라도 에어컨을 사야겠다고 결심하고 전자제품 대리점을 찾았다.

아뿔싸. 우리 집 크기에 맞는 에어컨은 인기가 많아 적어도 20일은 기다려야 한단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대리점 점원은 “재고가 꽤 많았는데 저희 대리점에 물량이 많다는 소문이 나서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찾아와 물건이 전부 빠졌다”고 했다. 그는 에어컨이 들어올 때 쯤에는 여름 더위가 한 풀 꺾였을 거라며 난감해했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열대야 시작된 이후 귀가 미루고 카페 전전

열대야가 시작된 이후 12시 이전에는 집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카페 등에서 귀가를 미루고 버틴다. 문제는 수면이다. 선풍기는 온풍기로 전락한지 오래다. 어제도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데 오늘은 제대로 잘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잠을 제대로 못자니 생활이 엉망이 됐다. 출근할 때부터 몸이 찌뿌드드하고 머리는 하루종일 몽롱하다. 기사를 쓰다가도 꾸벅꾸벅 존다. 종종 점심을 거르고 잠을 잔다. 요새 소원이 3시간을 연속으로 자는 거다.

이렇게 되니 제일 무서운 게 ‘열’이다. 집안에서 열을 발생시킬 만한 전기제품 사용을 최소화했다. 헤어드라이기 열기가 무서워 고등학교때 헤어스타일로 돌아갔다. 가스레인지는 켜지 않은 게 2주는 확실히 넘었다. 지난주에는 잠결에 냉장고 모터 도는 소리가 짜증나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꽂기도 했다.

술자리는 기피대상 1호다. 술기운에 몸에 열이 오르면 더 덥다. 귀가 후 차갑게 식힌 맥주 한잔을 마시는 즐거움도 포기한 지 오래다.

나는 결국 잠을 자기 위해 ‘차’를 탔다. 열대야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일 저녁 11시께, 바깥 온도는 31도까지 올라갔다. (사진 = 조용석 기자)
한강변에 차 대놓고 잠자기 보름 째…열대야 언제 끝나나

열대야에 잠을 못 이룬다고 하소연하자 친구들이 조언을 해줬다. 한 친구는 샤워를 하고 바로 자라고 했고 다른 친구를 차라리 모텔에 가서 자라고 했다.

샤워를 하자마자 자리에 누워봤지만 찬물로 식은 몸이 다시 더워지는 건 순식간이다. 하루저녁에 3번이나 샤워를 해보기도 했다. 모텔을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숙박업소 특유의 냄새에 적응하기 어려워 결국 포기했다.

냉풍기 등 에어컨 대용품을 추천받기도 했다. 하지만 냉풍기는 팬 소리가 커서 잠 잘때는 사용하기 어렵다. 다른 냉방기기도 무더위를 쫓아내기는 역부족이다.

결국 이달 초부터 차에서 잠을 자고 있다. 집 주차장은 노상변이어서 가까운 한강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에어컨을 켜놓고 잔다. 인적이 드물고 불빛이 많이 비치지 않아 잠자기 좋은 주차장소도 알아냈다.

그러나 차 안에서 자는 쪽잠이 편할 리 없다. 자고 나면 허리부터 온몸이 쑤신다. 차량 에어컨은 취침 모드가 없다. 켜놓으면 계속 돌아간다. 덕분에 잠결에 추워서 창문을 내렸다가 한강변에 서식하는 모기떼의 야식꺼리로 전락한 것도 여러 번이다. 잠자리가 불편하다 보니 제때 못 일어날까 싶어 알람을 3개나 맞춰놓고 잔다. 그래도 찜통 같은 집보다야 차가 낫다.

고(故) 박완서 선생의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소설에는 옥탑방에 사는 사촌동생의 여름나기 이야기가 나온다. 선풍기를 두 대나 틀어놓고 자는데도 옥탑방 더위가 화덕 같아 러닝셔츠를 물에 담갔다가 대강 짜서 입고 자면 마르는 동안은 좀 견딜만하다는 대목이 있다.

안쓰럽게 느꼈던 사촌동생의 처지가 지금 내 처지다. 아 덥다. 오늘도 잠을 자러 한강변에 나가야 할 모양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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