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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두 번째로 인사 드립니다. 지난주 국내총생산(GDP), 그 첫 번째 이야기를 해드렸는데요. 공교롭게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올해 경제성장률이 연초 전망한 3%를 다소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지요. 2%대면 저(低)성장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해가 갈수록 사람들은 “못살겠다” “팍팍하다”고 하소연합니다. ‘헬조선’이란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분명 원하는 옷을 입고 먹고 싶은 걸 먹고, 또 가끔 여행도 다니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 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지요. 그래도 무엇인가 답답한 이 마음, 도대체 왜 그럴까요.
“우리가 행복하자고 돈을 버는 건데…”
“일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만화 ‘미생’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 그가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했던 이야기가 참 와닿았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하더군요. “아파트 1층에 어린이집이 있어 아이를 맡겼는데, 일이 생겨 늦게 찾으러 갔더니 어두컴컴한 저녁에 종일반 아이들이 우루루 나오더라고요. 이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일상이 무너져 힘들어 하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미생의 선 차장도 “우리가 행복하자고 돈을 버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어”라고 하지요.
저희 집을 예로 들어보면요. 큰 아이는 오전 9~10시 어린이집에 가서 오후 4~5시쯤 집에 옵니다. 물론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맞벌이는 전국에 519만가구(2014년 기준)나 된다고 합니다. 배우자가 있는 가구의 44%지요. 두 집에 하나 꼴입니다.
두 명이 벌면 그만큼 GDP는 두 배 이상 증가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회사에서 버는 돈이 나라 전체의 GDP에 기여하겠지요. 출·퇴근 때 교통비도 들겁니다. 아무래도 외식 비중도 더 커지겠지요. 아이를 학원이든 어디든 맡기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돈을 쓴 만큼 또 누군가는 돈을 벌고, GDP는 그만큼 불어나겠지요. 맞벌이의 일반화는 곧 성장의 여건이 갖춰지는 것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 겁니다.
윤태호 작가의 문제의식은 이 지점입니다. 경제는 커지는데 삶의 질도 동시에 나아지는가. 독자 여러분 중 맞벌이가 있을 겁니다. 어떠신가요. 가사부담은 어떻게 나누고 계신가요. 가사도우미가 있으면 그나마 낫겠지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지 읺으십니까. 제 주위에도 “사람답게 살자”면서 외벌이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지인들이 있습니다.
아이의 관점으로 한 번 볼까요. 저는 외벌이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등교할 때도 하교할 때도 어머니는 집에 계셨습니다. 떡볶이도 샌드위치도 김치찌개도 직접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가사일은 GDP에 잡히지 않습니다. 경제규모는 더 작을 수 밖에 없다는 건데, 그래도 저는 그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가정의 온기, 정신적 안도 정도 되겠지요. 요즘은 달라졌지요. 제 아내는 “초등학교 저학년은 하교 후 학원을 전전한다더라”며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물질적인 GDP와 정신적인 행복의 괴리이지요.
경제규모는 커지는데 삶의 질은 제자리
그런데 이게 안 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 빚을 뜻하는 가계신용은 지난해 12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원금 갚고 이자 내기 바쁩니다. 자녀 학원도 여러군데 보내야 하고요. 원하는 지출이 줄어든 삶. 빚을 늘리는 건 쉽게 GDP를 증가시키는 방법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곱씹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우울한 얘기만 했나요.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맞벌이는 시대의 산물입니다. 문제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힘이겠지요. 우리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했나 봅니다. 윤태호 작가는 “내 가족이 일상을 지키며 일상적인 언어로 보람있게 채워져야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지요. 자, 독자 여러분의 일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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