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경제 다시보기]경제는 성장하는데, 왜 삶은 팍팍해지는 걸까

우리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이야기
  • 등록 2016-04-02 오전 8:00:00

    수정 2016-04-02 오전 8:00:00

최근 20년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 추이. 단위=만원. 출처=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두 번째로 인사 드립니다. 지난주 국내총생산(GDP), 그 첫 번째 이야기를 해드렸는데요. 공교롭게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올해 경제성장률이 연초 전망한 3%를 다소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지요. 2%대면 저(低)성장으로 봐야 합니다.

다만 어쨌든 성장은 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GDP 규모가 전세계 11위(지난해 기준)입니다. 이 정도 크기로 3% 안팎 성장하는 국가는 현재 거의 없습니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아무래도 굼뜨기 마련이지요. 우리나라의 1인당 GDP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인당 GDP는 달러화 기준 2만7214달러로 전년 대비 소폭 줄긴 했지만, 환율까지 고려한 원화 기준은 3079만원으로 늘었습니다. 최근 몇 년을 봐도 금융위기 때인 2008~2009년을 제외하면 계속 성장 중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해가 갈수록 사람들은 “못살겠다” “팍팍하다”고 하소연합니다. ‘헬조선’이란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분명 원하는 옷을 입고 먹고 싶은 걸 먹고, 또 가끔 여행도 다니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 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지요. 그래도 무엇인가 답답한 이 마음, 도대체 왜 그럴까요.

“우리가 행복하자고 돈을 버는 건데…”

“일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만화 ‘미생’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 그가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했던 이야기가 참 와닿았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하더군요. “아파트 1층에 어린이집이 있어 아이를 맡겼는데, 일이 생겨 늦게 찾으러 갔더니 어두컴컴한 저녁에 종일반 아이들이 우루루 나오더라고요. 이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일상이 무너져 힘들어 하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미생의 선 차장도 “우리가 행복하자고 돈을 버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어”라고 하지요.

제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 더 공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윤태호 작가의 말은 시대의 자화상을 잘 꿰뚫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을 예로 들어보면요. 큰 아이는 오전 9~10시 어린이집에 가서 오후 4~5시쯤 집에 옵니다. 물론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맞벌이는 전국에 519만가구(2014년 기준)나 된다고 합니다. 배우자가 있는 가구의 44%지요. 두 집에 하나 꼴입니다.

두 명이 벌면 그만큼 GDP는 두 배 이상 증가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회사에서 버는 돈이 나라 전체의 GDP에 기여하겠지요. 출·퇴근 때 교통비도 들겁니다. 아무래도 외식 비중도 더 커지겠지요. 아이를 학원이든 어디든 맡기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돈을 쓴 만큼 또 누군가는 돈을 벌고, GDP는 그만큼 불어나겠지요. 맞벌이의 일반화는 곧 성장의 여건이 갖춰지는 것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 겁니다.

윤태호 작가의 문제의식은 이 지점입니다. 경제는 커지는데 삶의 질도 동시에 나아지는가. 독자 여러분 중 맞벌이가 있을 겁니다. 어떠신가요. 가사부담은 어떻게 나누고 계신가요. 가사도우미가 있으면 그나마 낫겠지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지 읺으십니까. 제 주위에도 “사람답게 살자”면서 외벌이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지인들이 있습니다.

아이의 관점으로 한 번 볼까요. 저는 외벌이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등교할 때도 하교할 때도 어머니는 집에 계셨습니다. 떡볶이도 샌드위치도 김치찌개도 직접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가사일은 GDP에 잡히지 않습니다. 경제규모는 더 작을 수 밖에 없다는 건데, 그래도 저는 그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가정의 온기, 정신적 안도 정도 되겠지요. 요즘은 달라졌지요. 제 아내는 “초등학교 저학년은 하교 후 학원을 전전한다더라”며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물질적인 GDP와 정신적인 행복의 괴리이지요.

경제규모는 커지는데 삶의 질은 제자리

아이러니한 점도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정작 빚은 많습니다. 행복이란 게 별 것 아니지 않습니까. 돈 쓰고 싶은 곳에 쓰고 사는 게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지요. 경제학은 이걸 ‘소비’라고 부릅니다. ‘투자’의 밑바탕에도 이런 유효수요가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이게 안 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 빚을 뜻하는 가계신용은 지난해 12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원금 갚고 이자 내기 바쁩니다. 자녀 학원도 여러군데 보내야 하고요. 원하는 지출이 줄어든 삶. 빚을 늘리는 건 쉽게 GDP를 증가시키는 방법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곱씹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우울한 얘기만 했나요.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맞벌이는 시대의 산물입니다. 문제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힘이겠지요. 우리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했나 봅니다. 윤태호 작가는 “내 가족이 일상을 지키며 일상적인 언어로 보람있게 채워져야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지요. 자, 독자 여러분의 일상은 어떠십니까.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경제뉴스를 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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