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신약 14호인 일양약품(007570)의 항궤양제 ‘놀텍’은 2009년 발매 이후 총 4차례 가격인하로 약가가 1405원에서 1192원으로 떨어졌다. 이중 3번의 약가인하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과 관련된 가격 인하다. 2013년 1월에는 환자 수가 많은 역류성식도염 효능이 추가되자 판매량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로 약가가 미리 깎인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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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부의 다양한 약가인하 정책들로 인해 제약사들의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의 책임을 제약사에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약품비를 줄이기 위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시행한 이후 새롭게 진입하는 신약의 가격은 낮게 책정하고 기존에 판매 중인 제품은 다양한 사후관리를 통해 약값을 깎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약가 사후관리로는 실거래가 조사에 의한 약가인하, 사용량 약가연동제, 기등재의약품 목록정비(시판 중인 의약품 경제성 평가해 퇴출하거나 약가인하)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제약사가 의료인에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적발돼도 약가를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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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량 약가 연동제는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약가인하 대상에 ‘처방실적 10%·50억원 이상 증가’도 끼워넣었다. 지난 2012년 약가제도 개편을 통해 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을 종전의 80%에서 53.55%로 떨어뜨렸고, 제네릭이 받을 수 있는 최고가격도 68%에서 53.55%로 낮췄다.
윤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약가는 보험재정 건전성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편의, 제약산업 발전 등에도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지금은 약가인하에 매몰된 측면이 있다”며 “다양한 약가인하제도를 도입하면서 제도가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윤 연구원은 “국내에서 약가가 낮게 설정되면 해외 진출할 때 적정 약가를 못 받을 수도 있다”며 “글로벌 전략을 세워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로 보령제약(003850)의 ‘카나브’는 약가 문제로 터키 시장 진출이 좌절된 바 있다.
제약업계는 막대한 연구·개발(R&D)비용이 투입되는 신약의 가격만큼은 우대해달라고 요청한다. 다국적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한국 시장에서 신약 가격을 떨어뜨리면서 본사 차원에서 한국시장 진출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나온다”고 토로했다.
김성호 전무는 “신약 가격을 현행보다 20% 비싸게 책정하더라도 4년간 추가로 투입되는 비용은 3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부는 R&D 노력에 대해 적정한 보상을 해주고 제약사들은 확보된 자금으로 신약개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가인하로 재정절감 한계..‘약품목수 줄이기’ 등 대책 동반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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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질환자와 노인인구의 급증으로 약품 사용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처방행태의 개선 없이 약가인하만으로는 재정절감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대표적인 사례가 처방건당 약 품목 수가 꼽힌다. 지난해 처방건당 약품 수는 3.76개로 2002년 4.15개보다 소폭 줄었지만 2개 정도에 불과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두 배 가량 많은 수준이다. 의료진과 제약사와의 뒷거래, 환자들의 다품목 처방 선호 등 다양한 요인이 지적되지만 처방 품목 수 줄이기가 약품비 지출 억제에 효과적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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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부는 지난 2011년 약품의 적정 사용 유도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적정기준가격제’와 ‘총액관리제’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참조가격제’라고도 불리는 적정기준가격제는 동일성분 또는 동일효능 의약품에 대해 일정가격을 정하고, 그 가격보다 비싼 약을 사용하면 초과액을 환자가 부담하는 제도다. 총액관리제는 약품비의 총액을 설정하고 총액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의료기관이나 제약사의 환급으로 약품비 지출 총액을 관리하는 제도다. 복지부 관계자는 “재정절감을 위해 참조가격제와 같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필요하지만 사회 전반의 합의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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