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체로 번질 조짐이어서 매우 염려된다. 지난 주말에는 국정화 반대 또는 찬성 집회가 서울 도심을 비롯한 곳곳에서 열려 나라가 온통 어지러웠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5일 확정 고시되면 ‘역사 전쟁’은 정점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문제는 사회 갈등을 보듬고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해묵은 이념 투쟁에 앞장서서 국민에게 확전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장외집회와 서명운동 등으로 여론몰이에 나선 야권이 바로 그렇다. 자칫 국회의 공론장을 내팽개치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고질병이 또 도질 참이다. 지난 정권 때 ‘광우병 괴담’으로 빚은 극도의 사회 혼란을 반성하기는커녕 한 번 더 대중 선동으로 재미를 보자는 심산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역사교과서가 검·인정 체제로 전환된 이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몇몇 진보성향 역사학자가 카르텔을 형성해 ‘집필 권력’으로 군림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의 시정 지시를 거부하거나 소송으로 맞대응하며 좌편향 역사관을 고집한다. 역사를 보는 시각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학자들끼리의 얘기다. 학문적 소양이 백지상태나 다름없는 중·고등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놓고 ‘학문의 다양성’ 운운하는 국정화 반대논리는 빛 좋은 개살구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
어떤 논리로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비하하고 3대 세습 독재체제인 북한을 미화하는 엉터리 역사를 우리 학생들에게 가르쳐선 안 된다. 국정화가 잘못이라면 국회에서 정부를 상대로 엄중히 따져 바로잡는 게 야당의 할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순진한 학생들을 ‘길거리 정치’에 들러리 세우는 ‘철부지 정치’를 되풀이했다간 광우병 소동 때처럼 수권정당 이미지에 먹칠할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극한투쟁으로 치닫던 여야가 무(無)쟁점 법안 처리와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인선 등을 위한 ‘원 포인트 국회’를 내일 열기로 전격 합의했다니 다행이다. 지금 정치권의 가장 화급한 과제는 길거리 투쟁이 아니라 국회를 중심으로 한 ‘대화 정치’의 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