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 "책 할인해 돈벌던 시대는 끝…이젠 투자로 승부"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 출판위기라는데
출판인들 종이에 집착…변화에 뒤처져
이윤 좇기보다 책의 다양성 살리고
가격거품 빼면 독자 먼저 찾을 것
- 도서정가제 과제는
동네서점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서점 오프라인 진출 시기상조
대형 유통업체 공급률 정상화 먼저
  • 등록 2015-04-07 오전 6:21:10

    수정 2015-04-07 오전 6:21:10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출판이 올드산업이라고 투자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며 “지식정보산업의 가장 밑바탕을 지탱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흔히 출판이 위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출판이 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출판이 가진 힘과 희망은 예상 외로 크다. 단순한 책장사가 아니다. 우리사회에 필요한 지식·정보·문화를 공급하는 곳이다. 올드산업이라고 투자를 주저해선 안 된다. 지식정보산업의 가장 밑바탕을 지탱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윤철호(54)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사회평론 대표)의 생각은 단단했다. 윤 회장은 지난 2월 제9대 한국출판인회의 수장으로 선출됐다. 지난해 6월 박은주 전 김영사 대표의 사임으로 회장대행을 맡아온 꼬리표를 떼고 국내 주요 출판사 435개사를 대표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 여전히 출판환경이 녹록지 않은 탓에 윤 회장은 부임하자마자 출판계 내부의 갈등을 중재하고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출판업 부활의 전기를 마련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됐다.

반가운 것은 윤 회장이 철저한 낙관론자라는 것.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조차 쉽지 않는 세상이 되면서 출판이 고사 직전에 몰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윤 회장의 신념은 견고하다. 출판의 가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인터넷·스마트폰에 중독된 세간의 인식과는 상반된다. 믿는 구석은 뭘까. 해답을 찾기 위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사무실을 찾았다.

▲“개정 도서정가제, 소비자·출판사 윈윈해야”

출판산업이 위기라는 지적에 윤 회장은 고개부터 저었다. 윤 회장은 “출판산업이 위기라는 건 종이책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종이만이 아니다. 다른 형태의 출판이 생겨나고 있다. 전자책도 있고 웹툰도 발전하면 출판이다. 미디어산업의 변화 속에서 서로 융합하고 상호 자극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위해 출판의 방향성 정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많은 출판인들이 요즘의 사회변화에 당혹스러워하지만 출판의 비전과 방향성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며 “2인3각 경기처럼 힘을 합쳐야 한다. 지금은 그런 것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과 관련해선 소비자와 출판사가 윈윈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를 예로 들었다. 우리와 유사한 도서정가제 시행 초반 반대운동이 있었지만 5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았고 순기능이 나타났다는 것. 윤 회장은 “책이 팔리지 않으면 궁리를 해야 한다”며 “성공모델을 찾으면 소비자에게 이익이 가고 출판사도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출판산업, 매출이 핵심 아니야”

하지만 무조건적인 이행에는 선을 그었다. 개정 도서정가제를 시행해 보고 긍정적 씨앗이 생기지 않으면 소비자 편익을 위해서라도 당장 없애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출판시장의 변화에는 방점을 찍었다. 최근 몇년간 대형출판사의 과도한 마케팅과 사재기, 인터넷서점과 홈쇼핑의 할인공세 등으로 뻔한 책만 팔리는 최악의 상태가 이어져 왔다는 것. 다시 말해 오로지 할인에만 목숨을 걸며 이윤을 추구해온 악순환에서 벗어나 콘텐츠의 질로 승부를 내자는 것이다. 윤 회장은 “출판사가 살기 위해 먼저 책의 방향성과 다양성을 살리고 가격에서 거품을 빼면 결국 독자가 찾게 될 것”이라며 선순환 구조의 확립을 강조했다.

출판의 위기는 매출만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진단했다. 윤 회장은 “모든 관심이 매출과 할인에 집중되면서 동네서점이 줄도산했다”며 “인터넷서점 몇 개를 키우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매출은 결과다. 그것을 중심으로 평가하면 사업구조가 왜곡되고 출판산업 전체에 거품이 생긴다”며 “출판산업은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생산의 수준을 높여 사회에 기여한다. 돈을 버는 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점 오프라인 진출은 시기상조”

지난해 11월 21일부터 시행한 개정 도서정가제 이후에 떠오른 과제가 있다. 대형 유통주체들의 공급률(도매가) 정상화 문제다. 윤 회장은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인터넷서점이나 대형서점의 영업이익은 상승했는데 과연 출판사의 납품가격이 올랐느냐”고 반문하면서 “아니다. 도서정가제를 가장 반대하던 인터넷서점이 혜택은 가장 많이 보고, 욕은 출판사가 먹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온·오프 대형서점들이 도서의 공급가를 높여줘야 한다. 출판사에도 떡고물이 생겨야 소비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터넷서점의 오프라인 진출 시도에는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윤 회장은 “출판사에 슈퍼 갑질하는 인터넷서점이 과연 동네서점을 배려하겠느냐”면서 “동반성장 차원에서 동네서점을 좀 더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에 투자해 출판경쟁력 높여야”

출판시장의 흐름이 자기계발서나 실용서 위주로 편중돼 있다는 지적에는 “꼭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대중의 취향이다. 유행가의 흐름과 비슷하다”며 “다만 베스트셀러라고 꼭 좋은 책이 아니다. 단지 많이 팔리는 책”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새로운 지적 조류를 이끌어야 하는 출판사의 역할을 당부했다. 윤 회장은 “출판사는 독자를 계몽하고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도 “자본력이 척박한 국내 대다수 출판사를 대신해 대형 출판사가 지식사회의 흐름을 선도하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베스트셀러 내기에 바쁘다”며 아쉬워했다.

출판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사람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국내 출판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데는 1980년대 취업이 힘든 운동권이 출판계에 대거 들어와서 기여한 측면이 있다”며 국내 출판사의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바로 “비싼 돈으로 저작권을 사고 광고를 많이 해서 싸게 공급하는 것보다는 콘텐츠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결국 콘텐츠는 돈이 아닌 사람이다. 맨파워에 투자해야 출판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윤철호 회장은 누구?

평생을 책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출판쟁이다. 월간 ‘사회평론길’ 편집국장, 한국출판인회의 수석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회평론 대표, 출판유통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1961년 경기 부천생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대 초반 월간 ‘길을 찾는 사람들’ 창간작업에 뛰어들면서 출판계에 입문. 1993년 진보적 지식인들이 발간하던 월간 ‘사회평론’과 회사를 통합한 후 빚더미에 묻혀 무기한 휴간할 때까지 월간 ‘사회평론 길’을 발간했다. 이후 1998년 11월부터 월간지를 휴간하고 단행본 출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오늘의 사회평론을 만들었다. 사회평론은 영어교재, 인문학술교양, 어린이책 등 크게 세 분야를 아우른다. 2001년 대한민국 출판문화대상, 2005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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