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성공할 것만 골라 지원..공공시스템, 창조경제의 덫"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인터뷰
'정부주도 창조경제'에 쓴소리
  • 등록 2014-04-29 오전 6:10:00

    수정 2014-04-29 오전 6:10:00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미래창조과학부가 리드하고 있는 한 창조경제의 꽃은 필 수 없습니다.”

김도훈(57) 산업연구원장의 말은 짧고 강렬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 슬로건인 창조경제는 여전히 논란을 낳고 선도기관인 미래부의 역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책연구기관 수장의 일침은 신선했다.

최근 이데일리와 만난 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이 활짝 웃고 있다.(한대욱 기자)
◇실패 용인하지 않는 공공시스템..넘을 수 없는 장벽


김 원장은 “미래부의 구성을 보면 옛날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다. ICT와 과학기술이 그들에게 금과옥조”라며 “대통령은 창의성과 상상력, 산업과 문화가 만나는 걸 강조했는데 미래부는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미래부를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태생적인 한계를 지적한 거다. 김 원장은 “정부 주도의 기술개발(R&D) 성공률이 90% 이상이다. 성공할 수 있는 것만 골라 지원해준다는 것을 방증하는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공공시스템구조가 리스크가 큰 창조경제에 모험을 걸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1조원의 자금을 1000억원씩 10곳에 투자해 8곳이 실패하더라도 2곳이 1조씩 2조의 이익을 냈다면 자금 운용을 매우 잘한 게 된다. 하지만, 공공부문은 절대 그런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곳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설립하며 창조경제 허브 구축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김 원장은 “다들 창조경제의 의미는 이해한 거 같다”면서 “폭발적 리스크를 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大기업 中企흡수 아닌 파트너로 인정해야

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한대욱 기자)
김 원장이 창조경제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꼽은 이는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기술력이 아닌 세상을 뒤집어서 보는 눈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부분이 소프트웨어를 사서 이를 기반으로 시작하는데 잡스는 플랫폼을 먼저 만들고 소프트웨어업자들이 모이도록 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이뤘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창조경제도 이와 같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선결 조건이 있다. 좋은 기술자와 사업화를 이끌어줄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하고 아이디어가 진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그는 “창조적인 사람은 기업에 있다. 그러나 벌써 기업들도 경직되기 시작했다. 영역 지키기, 이익 지키기에 너무 민감하다”며 “기업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김 원장은 그러면서 최근 무인기 제조사인 ‘타이탄 에어로스페이스’와 세계 최대의 모바일 메신저 와츠앱(whatsapp), 스마트 온도조절장치 개발업체 ‘네스트 랩스’ 등을 잇달아 인수한 미국 구글사의 예를 들었다.

그는 “구글의 경우 원래 있던 인재들의 고유 능력을 그대로 인정하고 유지하기 위해 인수기업의 재무부문에만 참여한다”며 “하지만 우리 대기업은 기업을 인수한 뒤 반대되는 사람은 내보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파트너십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좋은 기술만 흡수하려는 약삭빠른 행태가 불신을 낳는 만큼 상생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새로운 먹거리 투자해야

김 원장은 새로운 먹거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장으로 취임하며 ‘미래산업연구실’을 신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에선 신산업 성장동력을 제시하기 위해 미래유망산업으로 정보보안, 대체현실, 사물인터넷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잘살게 됐다고 안주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절박감이 사라진 것 같다”며 “새로운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산업이 태어나지 않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창조적 시기가 왔다고 다들 느끼고 있다”며 “독특한 아이디어로 접근을 모색 중인 아이디어맨들이 이곳저곳에 숨어 있다. 놀라운 분들이 많다. 이들에게 창조의 문을 열어주려면 기업의 투자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규제 개혁..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길

지난 3월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김 원장은 규제를 진드기와 먼지에 비유했다. 그리고 봄이 되면 이불 속에 있는 진드기를 털어내야 한다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원격의료는 산업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대표 신산업이지만, 의료법에 가로막혀 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시S5에 심장박동 측정기능을 탑재했다가 의료법에 발목 잡혀 불법의료기기 논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가 단적인 예다. 그는 “기술력과 문화가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가 튀어나와도 옛날 법의 그물에 걸려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새로운 산업이 시작할 수 있게 과감하게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규제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그는 경계했다. 그는 “규제가 만들어진 목적은 국가적 필요성과 정책적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서지만 부장용을 생각하지 않을 때,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할 때 그렇지 못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며 “봄이 왔으니 봄에 맞게 옷을 갈아있는 것처럼 그렇게 접근하면 규제는 ‘더 나은 규제(Better Regulation)’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훈 원장은

김도훈 원장은 대표적인 통상전문가다. 1957년생인 그는 부산 동래고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재직 중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통상산업부 장관자문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무역국 수석행정관 등을 지냈다.

산업연구원에서 산업정책실장ㆍ동향분석실장ㆍ연구본부장을 거쳤으며 지난해 5월 제19대 원장에 취임했다. 한국-EU학회장,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민간위원,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심의회 위원, 한국규제학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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