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가 넘어서자 조용하던 사무실에 20여 명의 손님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플레시먼힐러드에서 함께 근무하던 옛 직장동료들이 회사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대거 방문한 것. 이날 플레시먼힐러드에서는 현재 근무하는 직원들과 옛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의를 다지기 위해 조촐한 저녁파티가 마련됐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회사는 매년 봄철에 정기적으로 이런 친목도모 파티를 연다.
“‘펀(Fun) 경영’의 출발은 회사에서 근무하다 떠나는 사람과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내는 데서 비롯된다. 이직하는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안지 못하면 남아 있는 직원들도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박영숙(52) 플레시먼힐러드코리아 대표는 “회사에서 각종 파티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지만 직원들을 떠나 보낼 때 열어주는 송별회 파티가 가장 화기애애하다”고 자랑했다. 실제로 이날 파티에도 박 대표 바로 전에 이 회사 대표를 맡았던 문현기 우석대교수를 포함해 20여명의 전 직장동료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한 회사의 전임 CEO와 현직 CEO가 한자리에 모여 돈독한 우의를 재확인하는 특별한 자리이기도 했다. 토종 한국기업들에서는 보기힘든 이색적인 풍속도였다.
플레시먼힐러드는 미국 세인트 루이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 1위 PR 커뮤니케이션 회사다. 미국, 영국, 중국, 한국등 세계 28개국 83개 도시에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직원 25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1년 법인을 설립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모그룹은 세계 최대의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 업체인 옴니콤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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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옛 직장동료 100여명이 지금도 플레시먼힐러드의 공식 프리랜서로 각종 주요한 프로젝트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회사가 최근 매출이나 사업이 급격한 확장추세에 있음에도 조직 구성원 규모를 늘리지 않고 45명 수준으로 3년째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갖춘 베테랑급 전 직장동료로 구성된 이 전문가 풀은 이 회사의 최고 경쟁력이자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과거 직장동료에 대한 회사 차원의 각별한 배려는 사무실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제시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회의실이 대표적이다. 제시카는 얼마 전 개인 사정으로 회사를 떠난 이지윤 전 부사장의 영어 애칭이다. 이 전 부사장을 기리기 위해 회의실의 이름을 바꾼 것이다.
전, 현직 회사 직원간 이처럼 끈끈한 연대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박 대표는 직원 추천제를 통한 채용제도를 첫손으로 꼽았다. 박 대표는 “직원을 채용할 때 전, 현직을 가리지 않고 회사 구성원들이 추천한 자를 가장 우선적으로 채용한다”며 “그러다보니 대부분 직원들이 서로 잘 아는 사이여서 유대감이 강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 현직 직원들의 추천을 통해 이 회사에 합류한 직원은 이제 전체 직원의 절반을 훨씬 웃돈다. 특히 추천으로 뽑힌 직원이 1년 이상 퇴사하지 않고 근무하면 추천을 한 직원에게 100만원을 포상할 정도로 직원추천을 적극 권장한다.
‘후배를 성공시키는 것.’ 이 회사의 독특한 이 경영 모토도 구성원간 팀워크를 강해지게 하는 또 다른 발판이 되고 있다. 특히 후배의 ‘무한성장’을 독려하기 위해 서로 다른 부서에 있는 선, 후배들을 예외없이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맺어주고 있다. 심지어 멘티보다 나이가 어린 직원이 멘토가 되는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제도도 함께 운영할 정도로 활성화돼있다.
‘안식월 제도.’ 플레시먼힐러드의 직원들이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회사의 복지제도다. 직원들에게 3년 근속할때마다 1개월의 장기 유급휴가를 주는 제도다. 안식월에는 월급은 기본이고 여기에 여행비 명목으로 연봉의 10% 가량을 추가로 지원해 준다. 장기휴가를 간 대부분 직원들이 해외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히고 돌아오기 때문에 업무효율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전직원이 3년마다 1개월 기간의 안식월을 회사 지원아래 가지다 보니 “일에 대해 싫증을 낼 겨를이 없다”는 게 직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파격적인 안식월 제도는 이직이 거의 없는 비결이 되고 있기도 하다.
플레시먼힐러드는 여성들이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회사로도 업계에 입소문이 많이 나 있다. 박 대표를 포함해 전체 직원의 65%가 여성일 정도로 여성비중이 압도적이다. 여성들이 이 회사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플레시먼힐러드 특유의 ‘품앗이’ 기업문화가 배경이다.
“여성 직원을 위해 각종 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되려면 제도가 아닌 여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기업문화가 먼저 뿌리내려야 한다.” 박 대표는 여성직원에 대한 배려는 제도나 형식이 아닌 동료직원들의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와야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펀 경영’을 위해 직원들과의 허심탄회한 스킨십도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매년 6월 박 대표의 서울 방배동 자택에 전 직원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자리에서 박 대표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은 개인별로 장기자랑을 하면서 우의를 다진다.
한달에 한번 씩 오전 근무를 끝내고 오후에 전 직원들이 팀별로 하고 싶은 특별한 이벤트를 갖는 것도 이채롭다. 이 이벤트는 팀별로 막내 사원이 전권을 쥐고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실시한다. 영화나 스포츠 관람 또는 야외 파티등 팀별로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즐긴다.
‘심각한 재미(Serious fun).’ 박 대표가 플레시먼힐러드의 기업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꼽은 키워드다. “전문가로서의 수준급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일이 가치있고 재미있어야 한다.” 박 대표는 회사업무가 수준이 있으면서도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직원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최대 PR 커뮤니케이션 업체의 최고경영자답게 한국기업들의 부족한 면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박 대표는 “각 품목에서 세계 1등에 오르는 업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기업문화 측면에서 보면 국내기업들은 여전히 후발주자로 남아 있다”고 진단하며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업문화가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원천이라는 점을 최고경영자들이 절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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