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 호소하다 극단 선택한 간호사…수사는 1달 만에 끝났다 [그해 오늘]

2018년 2월 스스로 생 마감한 박씨
간호사였던 박씨, ‘태움’ 의혹 제기돼
경찰은 한달 만 ‘내사 종결’…“증거無”
  • 등록 2024-03-19 오전 12:00:10

    수정 2024-03-19 오전 12:00:10

2018년 4월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2018년 3월 19일. 병원 내 ‘태움’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 선택을 한 간호사 고 박선욱씨(당시 27세·여)에 대해 경찰이 ‘혐의없음’으로 내사를 종결했다.

사건은 그로부터 한 달 전이자 설 연휴였던 2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10시 40분께 송파구의 한 아파트 고층에서 박씨가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전 서울아산병원의 간호사로 근무했던 박씨는 입사 6개월 만에 사망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 송파경찰서는 유가족의 주장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과 가혹행위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박씨의 남자친구, 동료 간호사 등 17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동시에 박씨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에 대해 디지털포렌식 작업을 벌였다. 병원 내부의 CCTV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박씨 휴대전화에 있던 ‘업무 압박과 선배 눈초리에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해졌다’,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자고 끼니는 매번 거르고 있다’는 등의 메모를 발견했다. 또 휴대전화를 분석한 결과, 박씨가 사망 전 의료사고 소송과 관련한 검색을 36차례 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 간호사의 사망 소식이 세상에 알려진 후 간호사 조직 내의 이른바 ‘태움’ 의혹이 제기됐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방식을 일컫는 용어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말에서 비롯된 용어다.

다만 박씨와 함께 병원에 입사해 같은 곳에서 일하다 3개월 만에 퇴사한 다른 간호사는 “(병원에서) 박씨에 대한 폭행이나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2022년 2월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앞 성내천 다리 위에서 ‘고(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연 선전전에서 참가자들이 박 간호사의 4주기를 맞아 추모 리본을 매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결국 경찰은 박씨와 관련해 참고인 조사 등을 벌인 결과 폭행·모욕·가혹행위 등과 관련한 자료를 발견하지 못해 범죄혐의 없이 ‘내사종결’ 처리를 결정했다.

사건은 종결됐지만 박씨 유족 측과 시민단체는 ‘진상규명과 산재 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세우고 박씨에 대한 산재를 신청했다. 마침내 박씨가 세상을 떠난 후 약 1년이 지난 2019년 3월, 근로복지공단은 박씨의 유족이 제출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 건에 대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다만 공단 측은 “이번 사례는 간호사 교육 부족 등 구조적 문제에서 야기된 과중한 업무와 개인의 내향적 성격 등으로 인한 것”이라며 ‘태움’에 따른 피해는 심의 근거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 박씨의 유족이 아산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서울동부지법은 병원 측이 유족에게 3900여 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병원 측이 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씨의 사망 후 6년이 흘렀고, 그동안 각 병원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을 만드는 등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강도 높은 근무 환경 등에 대한 문제는 그대로라는 지적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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